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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Aug 06. 2019

커뮤니티 사이트 절교 선언

인생 두 번째로 커뮤니티 사이트를 차단하고

 자주 다니던 사이트 하나를 차단했다. 인생 두 번째 사이트 차단이다. 사이트의 성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성격과 잘 맞는 사이트였다. 맘에 들지 않은 것은 사이트의 커뮤니티 그 자체였다. 되도록이면 앞으로도 다른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이나 유머 게시판 같은 곳은 더 이상 들락거리지 않으려고 생각 중이다.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커뮤니티 사이트를 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문제다. 적어도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을 혼자 발전시키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들려주고 반응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각을 성급하게 끄집어내는 건 생각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모든 경우 그렇지는 않다. 글을 쓰거나 대화를 통해 누군가와 의견 교환을 할 때, 생각이 구체화되거나 더욱 성장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 다만 그 생각이 충분히 머릿속에서 배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 밖으로 나오게 되면, 그 생각은 더 자라지 못할지도 모른다. 약한 논리와 덜 자란 인과관계로 구성된 생각은, 덜 자란 골격과 피부를 가진 미숙아처럼 연약해서, 외부의 지적을 견뎌내지 못하고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삶을 바꿀 만큼 파급력이 있는 의식으로 자랄 수 있는 어떤 생각이, 성급히 머리 밖으로 끄집어내진 탓에 허무하게 도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커뮤니티 사이트는 그 어떤 수단보다 손쉽게, 다수에게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한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집 밖을 나서야 하고, 약속 장소에서 만나야 하고, 대화의 분위기를 살펴 가며 생각을 보여 줄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보여준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는 순간인데,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손가락 몇 번 두들기면 맞이할 수 있다. 쉬운 만큼 신중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다 자라지 못한 생각을 남들에게 수시로 보여 주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생각을 쉽게 턱턱 내어놓게 하는 공간인데, 심지어 타인의 의견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 커뮤니티 사이트이다. 누군가의 의견을 공격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일을 저지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물리적, 그리고 사회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상대방에게 맹목적인 비난을 퍼부을 만큼 형편 좋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런 제약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데다가,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상대가 내 신분을 알 수도 없다.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물리적, 사회적 족쇄가 없어진 이상, 표현은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그 자유는 주로 자극적,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런 방향성은 결국 의견 교환, 대화의 기본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하고, "상대는 틀리고 내가 옳다."는 것만 관철하게끔 된다. 커뮤니티 사이트라는 것은, 타당함이나 논리를 가진 자보다는, 상대를 우습게 만드는 자, 더 모욕적으로 몰아붙이는 자가 승리하게 되고, 끝내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이 되고 만다. 돌아보면, 커뮤니티 사이트를 하며 늘은 것은 사이트의 징계를 피하면서 말싸움이 붙은 상대를 최대한 기분 나쁘게 하는 방법들 뿐인 것 같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요약해보자면, 커뮤니티 사이트는 외부의 지적으로부터 살아남기 힘든 덜 자란 생각을 자꾸 내어놓게 되는 곳인 동시에, 멀쩡한 생각도 살아남기 힘들 만큼 무논리와 비난만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듣기에는 백해무익하고, 접속해있는 매 순간 고통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커뮤니티 사이트를 하며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저항하기는커녕, 자발적으로 고통과 혐오의 도가니에 매일 접속하고 있었다. 얕은 생각만으로 이뤄진 대화는 힘들지 않다. 즐거울 때가 많다. 게다가 내가 내놓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너무 즐겁다. 다른 사람의 흠을 잡는 것은 스스로에게는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뭔가 잘못한 사람을 단두대 위에 올리고, 단두대가 비어 있으면 단두대 위에 올릴 사람을 억지로 찾고 만다. 나는 이런 중독적인 반복 행위를 줄곧 "관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사소한 저항을 해도, 결국 크고 지속적인 이끌림에 의해 항상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해있는 나 자신의 모습은, "관성"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로운데 중독성까지 있는 존재라니, 애를 써서 끊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이트를 아예 차단해버렸다. 어떤 사이트를 들어가지 않기 위해 그 사이트를 차단까지 해야 하다니, 스스로가 이만큼이나 나약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단호하게 끊어내야만 한다. 어떤 사이트를 끊어냄으로써 잃는 것도 있을 것이다. 유익한 정보를 얻을 창구가 줄어들고, 어떤 생각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쉽게 엿보는 과정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통찰의 순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익을 잃더라도, 많은 가능성을 가진 내 생각들이 바스러지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영혼이 혐오로 물드는 것은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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