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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Aug 12. 2019

후회는 피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지금 후회하지 않아도 나중에 후회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나온 시절들에 대한 후회를 간간히 하고 있는 요즘이다. 특히 면접관들 앞에 서면 더 그렇다. "학창 시절에 봉사활동을 다니지는 않으셨나요?", "자기 발전을 위해 주도적으로 한 활동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왜 봉사활동을 안 했을까, 주도적인 것처럼 보이는 활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물론 그 시간 속의 나는 안 그랬을 것이다. 서류상 스펙을 위한 봉사활동은 안 하니만 못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자기 계발 활동을 하거나 강연 같은 것을 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시간 속의 나뿐 아니라, 그 시간으로부터 한 달 뒤의 나, 일 년 뒤의 나, 이년 뒤의 나도 안 그랬을 것이다. 그 시절을 후회하는 이유는, 지금 취업 준비를 하는 신분이 되고, 그때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실 없는 20대 초반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력서 상의 바람직한 활동들 대신, 밴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 것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밴드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밴드 동아리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끝내 여러 번의 멋진 공연을 해냈다. 처음으로 학교라는 제도 하에서 붙여주는 친구가 아닌, 내가 노력해서 만들 수 있는 친구를 만들었다. 합주 곡을 정하는 것, 준비한 곡을 모여서 합주하는 것, 사소한 구성을 바꿔보는 것, 합주 끝나고 뒤풀이를 하는 것, 마침내 준비한 곡을 가지고 공연에 서는 것, 모든 순간이 지나 보면 즐거운 추억이었고,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공연 며칠 전에는 - 맨날 감기에 걸리긴 했지만 -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이 곡이 끝나면 무슨 멘트를 해야 할까, 자기 전에 가끔 생각할 때도 있었다. 밴드를 하지 않았다면 더 내실 있는 자소서를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밴드 활동을 한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았고, 그 내용 역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기타에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자기 곡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에 와서는, 후회 한 점 없던 동아리 생활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구석에서 몇 대의 기타와 가상 앰프 시뮬레이션에 기대서 이런저런 소리를 만들어보는 것은 충분히 재밌는 일이다. 하지만 동아리 시절 이런 재미를 깨달았다면? 부원들이 들고 오는 각종 기타를 만져보고,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동아리방의 앰프들, 그리고 공연장의 앰프들을 써 보면서, 다양한 앰프를 만지는 법에 대해 지금보다는 더 잘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각자 가지고 다니는 이펙터 페달 역시 얻어서 써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도 졸업하고, 동아리에 아는 사람도 없고, 취업 준비까지 해야 하는 지금은, 컴퓨터 속 앰프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런 소리가 나겠구나 맛을 보거나, 유튜브 속 시연 영상을 통해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하는 것이 전부이다. 악기 판매하는 곳에 가서 쳐 보기는 너무 번거롭고 눈치도 보인다. 밴드 동아리를 하던 시절, 기타에 관심을 더 가졌다면, 훨씬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작곡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있는 곡을 커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도 충분히 어렵다. 하지만 어느 정도 커버를 했다면, 자기 곡이 있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커버는 잘하고 못 하고 가 존재한다. 원곡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곡은, 조금 모자란 부분이라도 그냥 자기 것이다. 고쳐가면서 성장하고, 그렇게 더 나은 수준의 음악에 도달할 수 있다. 감수성 풍부한 그 시절의 감성을 곡으로 옮겨뒀다면, 괜찮은 느낌의 곡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젊지만, 20대 초반과 후반은 결코 같을 수 없으니까. 그 시절의 성장통들을 푸념하고 끙끙 앓으며 보내버린 것이 후회된다. 곡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미리 했더라면, 지금쯤 여러 자작곡이 있을 것이고, 어디 가서 음악을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텐데, 제대로 된 자작곡 하나 없는 지금은 취미가 음악이라고 하기보다는, 기타 치는 것,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쁘지 않게 살아간다면, 살아가는 날이 늘어날수록 삶의 저변이 늘어날 것이다. 아는 것이 늘어날 것이고,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눈 앞에 있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과거도 돌아볼 테고, 그럼 지금 내게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뭔가를 더 많이 알게 된 미래의 내게는 보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후회는 그냥 필연적인 것 같다. 과거로부터 오는 후회에 사로잡히는 것은 정말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빛나는 순간을 보냈다는 판단을 그 당시의 나, 혹은 그로부터 가까운 미래의 내가 할지도 모르지만, 더 멀어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후회 없는 삶을 보내기란 이렇게 힘든 것이다. 하루하루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최대한 알차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적어도 현재는 행복할 테니까,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면, 어쨌든 알찬 삶이니까, 후회할 여지가 더 적어질 거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그럼에도 후회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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