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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Jun 22. 2020

무언가를 쓴다는 것

 글을 잘 쓰지 못하게 된 이유는 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쓰던 신변잡기 글이 아닌, 뭔가 의미가 있는 글, 목적이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냥 재미있게 읽고 말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쓰는 글에서 자신을 덜어냈다. 대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글, 더 비약하면 돈이 될 것 같은 글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예전만큼 글을 즐겁게 쓰지도 못하게 됐고, 많이 쓰지도 못하게 됐다.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럽지 않은 직장에 들어갔고, 삶의 많은 부분이 해결됐다. 아무렇게나 굴러가던 나의 삶은 갑자기 건실하게 살아온 것으로 둔갑했다. 주변 사람들이 자랑할 만한 뭔가가 됐다는 사실은 순수하게 좋은 사실 중 하나다. 회사에서의 괴로운 하루하루가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월급 덕에 잊을 수 있다. 몇 달간 월급으로 백수 시절 사고 싶었던 것들을 샀다. 비싼 기타, 비싼 맥북.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퇴근 시간에는 도저히 생산적인 일을 할 수가 없어서 그 비싼 물건들은 그저 트로피처럼 방 어딘가에 전시되어있을 뿐이다. 별로 손대지 않는 그 값비싼 트로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이상을 투영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글을 잘 쓰고 싶고 좋은 곡을 쓰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이상들은 좋은 회사에 들어감으로써 현실을 역전하는 것으로는 전혀 가까이 갈 수 없는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직장 동료에게 취준 시절 취미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떤 글인지 궁금해하는 동료에게 브런치의 아무 글이나 보여주었다. "네가 생각나지 않고, 서점에 들어가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첫 페이지를 읽은 것 같다."고, 동료는 글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서점의 책을 읽은 것 같다는 부분은 극찬으로 여겨져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부분은 꽤 공감이 됐다. 나 역시 가끔 예전에 내가 써놓은 글들을 읽으면, 그 글을 썼을 과거의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한때의 나는 한때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일주일 전에 쓴 글에 담긴 내가 어색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일이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와 너무 많이 달라졌다. 고민하던 거의 모든 것들이 해결돼 버렸기 때문에, 나는 예전과 같은 이유로 우울하거나 막막하지 않다. 걱정과 우울함이 원천이던 예전과 같은 글은 이제는 쉽게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뭔가를 쓰고 싶고,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장황한 의미부여를 떠나서, 그것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 그런 것들로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가지고있는 생각, 세계관, 감수성으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다시 쓰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과거 어느 순간 했던 다짐을 버리고, 전혀 의미가 없는 글 하나를 완성해냈다. 앞으로도 계속 의미없는 글을 써나갈 것이다. 어쨌든 쓰는 것이 남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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