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을 따라
누군가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것이 좋았다. 문득 흥얼거리는 멜로디에도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노래를 나쁘지 않게 부른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아가, 제대로 노래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치 좋아하는 아이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는 아이처럼, 밴드 동아리의 문턱만 기웃거렸다. 그렇게 한번 발을 담가 본 밴드 동아리는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첫날, 동아리방을 모조리 청소했다. 노래할 후배가 와서 기쁜 것이 아니라, 청소해줄 일손이 와서 기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둘째 날, 길고 긴 동아리 선배들의 명부를 받았다. 언젠간 외워야 할 거라고 선배가 귀띔했다. 우물 바닥으로 추락하는 브루스 웨인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을 타파해보려는 나의 발버둥은 무참히 저지당했다. 동아리도 탈퇴했고,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려고 휴학을 했다. 온 몸이 짓이겨지게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지만, 나는 그 순간 다음 도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년 뒤, 나는 똑같은 추락을 겪었고, 열아홉 때 이뤄놓은 업적 - 범접할 수 없는 높은 대학교 - 에 감탄하며, 다시 복학을 했다. 새학기에 밴드 동아리들이 공연을 하는것을 보았다. 어떤 동아리의 차례였는데, 보컬이 노래를 징그럽게 못 불렀다. 집에 와서 그 동아리의 카페에 들어갔다. 내가 너무 교만한 것은 아닌가 하고 그 밴드의 공연을 다시 찾아보았는데, 그 보컬은 화면 속에서도 아까와 같이 노래를 못 부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적당히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그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는 예상대로 적당히 할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공연이 하고 싶던 나는 절대 적당히 할 수 없었다. 보통 보컬들은 동아리방에 잘 나오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선배가 없기 때문에 혼자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무안하게 옆에 아무나 세워놓고 노래연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동아리방에 가서 악기 치는 친구들이 연습하는 노래를 알아내서, 그것을 연습할 때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제일 열심히 나오는 보컬이 되었다. 그 때 좋아하는 사람도 생겨버렸다. 짝사랑이었지만...
그 친구를 보기 위해 괜히 동아리방을 더 기웃거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연습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적당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어왔지만, 적당히 할 수 없게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공연을 못 할 뻔 했다. 드럼을 치는 사람은 뺀질대기만 하고 연습을 전혀 해오지 않았다. 팀이 공중분해됬다. 동아리고 뭐고 다 탈퇴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 아이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대립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유리목인 보컬을 가진 팀에서 나를 데려가고 싶어했다. 자기네 보컬이 두 곡을 부르면 목이 나가버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서게 되었다.
생애 첫 리허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무대를 내려왔을 때, 사람들의 눈빛이 굉장히 반짝거렸다는 것은 기억난다. 얼굴을 잘 모르는 몇이 다가와서 노래를 정말 잘 한다는 말을 건네고 멀어졌다. 자신감이 붙었다. 앞에서 두 번째 무대였기 때문에, 나의 차례는 금방 다가왔다. 무대에 올랐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반주가 시작되었고, 그 뒤로도 역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래가 끝난 뒤, 그 아이를 포함한 사람들의 눈동자는 아까처럼 빛나고 있었다는 것은 똑똑히 기억이 난다. 그것이 너무 좋았다. 그 순간을 마주하는것이 너무나 기뻐, 계속 음악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는 것, 그런 눈빛을 받는 것, 기대를 받는 것, 그런 것들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 밴드 생활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의 공연을 봐 주는 누군가였다. 굳이 거창한 공연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노래를 해 달라고 하면 진심을 다해 불러주는 편이다. 그 한 사람도 관객이기 때문이다. 내가 음악을 한다는 것이 성립하는 조건은 나의 음악을 들어주는 관객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내 노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방구석 뮤지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코멘트를 남겨주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감사하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가운데서 음악을 놓지 않게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