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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May 22. 2016

노래 잘 하는 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노래를 배운 적 없는 아마추어 보컬의 대답

 어쨌든 취미 밴드의 아마추어 보컬이지만, 사람들은 내가 취미로 음악을 한다는 것을 신기해하고, 소속된 밴드에서의 역할이 보컬이라는 사실에는 더욱 흥미를 보인다는 것을 상대방의 고조되는 리액션에서 간파해낼 수 있다. 으레 밴드를 한다고 하면 "오~ 어떤 파트를 하시는데요?" 정도의 대답을 받아내고, 보컬이라고 대답하면 "와! 정말요?" 같은, 처음 질문에 비해 다소 격한 반응이 나온다. 그리고 그 다음 나오는 질문은 거의 대부분이 "노래 잘 하는 법이 무엇인가요?" 이다.


"한 곡을 불러도 그것이 인생 마지막 노래인 것처럼 부른다." - 리암 갤러거

 보통 그런 질문에는 배운 게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TV에는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정말 많이 나온다. 좋은 보컬들을 품평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다. 저 보컬의 발성이 어떻고, 어떤 창법을 사용하고 따위의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노래 잘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딱히 없다. 하지만 노래를 잘 부르는 법에 대해 누군가 정말로 듣고 싶어한다면, 기술적인 부분 이외에 해 주고 싶은 말들은 분명히 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노래를 나의 경험, 그리고 감성 속에 온전히 녹여낼 수 있는가?


 보컬이라 하면 밴드가 연주하는 동안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 코러스를 제외한! - 유일한 파트이다. 남들은 박자를 구축하고 멜로디를 수놓아 가는 동안, 보컬은 멜로디가 입혀진 언어로 말을 한다. 말은 전달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다. 음악 역시 무대에서 관객석으로의 전달이다. 보컬은 그리고 그 전달의 과정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밴드의 누군가는 박자만으로, 또 누군가는 박자와 멜로디로 그것을 전달하지만, 보컬은 인간의 언어를 통해 그것을 전달한다.

 공연 곡을 정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밴드를 처음 시작하는 초심자들은 "할 수 있는 곡" 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대학교 축제 기간에 밴드 동아리의 무대에서 항상 울려 퍼지는 뮤즈, 그린데이, YB의 노래가 그러한 종류다. 자신이 가진 것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곡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기량을 한껏 뽐내기 위해 블루스를, 누군가는 트윈페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메탈을 공연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다양한 타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선곡을 하는데, 나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이 노래를 이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노래를 내 경험 속에 녹여낼 수 있는가이다.

사람들이 내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꼽는 것은 음울한 브리티시 팝이다. 

 사랑이 별로 성공적인 인생이 아니었다. 2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 짝사랑은 여전히 내 20대 초반의 길목에 바위처럼 놓여 있다. 외로워서 시작한 연애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말로는 모자란, 처참한 실패를 안겨 주었고, 내 삶을 한층 더 낮은 곳으로 보내버렸다. 그럴 때마다 내 발길은 연습실로 향했다. 합주 한 번에 상념들을 승화시키곤 했다. 고백하자면, 20대 초반에 시작한 밴드 보컬 경력에서, 나의 뮤즈는 내가 짝사랑했던 그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노래를 하는 나의 머릿속에서 닿을 수 없는 곳에 서 있기도 했고,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내게서 멀어져가기도 했고, 혹은 텅 빈 들판에서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 있기도 했다. 그런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가사 하나하나를 마치 내 이야기인 것 처럼 노래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그런 우울하거나 아련한 곡들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찬사를 보냈다. 내가 그 곡에 공감하는 만큼, 그리고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만큼, 그 노래를 더 잘 하게 됬던 것 같다.

나를 진정시켜줄 감기약을 기다리고 있어. (Young The Giant - Cough Syrup)

만약 당신이 날 홀로 두고 떠난다 해도, 난 당신을 기다릴 거에요. (Coldplay - In My Place)

친구인 채였다면 오히려 즐거웠을 것 같아. (델리스파이스 - 고백)

어느날 아침 네가 날 그리워하는걸 알게 되었을 때, 네 심장이 내가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내려 할 때, 네가 우리가 만났던 그 골목으로 돌아와서, 너를 기다리는 나를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이 곳에서 움직이지 않아. (The Script - The Man Who Can't be Moved)

내가 주변에 없을 때, 네가 그걸 알아줬으면 해. 난 내가 특별했으면 해. 그리고 넌 너무 특별하지. (Radiohead - Creep) 
진심을 다하면 통하는 법이다.

 대화하는 데 있어서, 화려한 말재주보다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공연은 전달이며 대화이다. 그렇기에 화려한 기교보다 진심을 다해 부르는 노래가 관객을 움직일 때가 있는 것이다. 자작곡을 원작자가 가장 잘 부른다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남의 곡을 커버할때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자작곡은 자신의 속에서 나온 곡이기 때문에, 자작곡을 공연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사연이 많은 보컬이 좋은 노래를 한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겪은 것이 많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많은 것이고, 결과적으로 좋은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흡을 연습하고, 창법을 연습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부를 노래의 가사를 읽고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기억과 하나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과정은 꼭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 들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노래를 배운 적 없는 아마추어 보컬인 내가, 노래 잘 하는 법에 대한 질문을 들었을때에 대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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