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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지옥

영화 "서치"를 감상하고 난 생각

by 이이육

근래 많이 한 생각 중 하나는 "커뮤니티 사이트는 백해무익하다."는 것이다. 취미 공유하는 커뮤니티는 괜찮다. 한 취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고, 그런 생각들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저변을 넓혀줄 수도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 되는 사이트라면 있는 잡담 게시판, 유머 게시판 등은 지옥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약자에게 폭력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 분노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을 넘어서 그러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곳, 그런 곳이 대형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유머 게시판의 실상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그런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맡긴 채, 어떤 사건에 분노하거나,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그런 혐오 글들에 공감하며 항상 무언가를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분법적이지 않고, 나와 반하는 의견을 가진 누군가의 동기가 고전 소설 속 악당처럼 순수한 악의 논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맹목적인 비난은 항상 위험하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것은 어떤 사건의 조각일 뿐이다. 그리고 혐오 조장 글의 대부분은, 조각을 보고 전체를 혐오하게끔 유도하는 것들이 많다. 그렇게 글의 장단에 맞춰 실컷 무언가를 비난하고 저주를 퍼붓는데, 며칠 뒤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같은 글이 올라오면, 어제의 악인을 맹렬히 비난하던 모범시민들은 오인 사격에 대한 사과는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조작이 쉬운 곳,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 인터넷, 그리고 커뮤니티 사이트는 기술 발전이 만들어낸 지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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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스크린 안에서 모든 장면이 펼쳐지는 "서치"는, 필연적으로 인터넷을 누비는 모습을 담는다. 딸에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것부터, 경찰에 신고하는 것,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 페이스타임 영상을 통해 컴퓨터 앞 주연들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유튜브에 올라온 뉴스 영상을 보여주는 등의 약간의 편법 역시 구사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유튜브 뉴스 기사, 그리고 그에 달린 댓글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향해 "안됐지만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저 사람이 죽인 거 아냐?", "저 여자애 내 파트너였어." 같은 댓글을 다는 장면, 그것이 피해자를 딸의 실종만큼이나 힘들게 하는 장면, 묘하게 리얼한 광경이 인상 깊었다. 왜 리얼하냐면, 요새 커뮤니티를 하다 보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댓글들을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가족 살인 사건 기사 댓글에 "가족 중 하나가 죽인 거 아니냐?"라는 댓글이나, 차마 쓰기조차 힘든 댓글들이 많이 달리곤 한다. 현실 세계에서 선을 넘었을 때 받는 경멸의 시선이나 처벌을 인터넷 속에서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마치 선 넘기 대회를 하는 것처럼 패륜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현실 속 인터넷의 모습이, 영화 속에 비슷하게 담겨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딸을 잃어버리게 된 것도 인터넷 방송 플랫폼 때문이다. 딸의 인터넷 방송을 통해 범죄자가 딸과 접촉하게 되었고, 결국 사건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방송 플랫폼을 통한 약자에 대한 폭력, 살인 등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물론 딸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것 역시 모두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SNS와 불법 신상 정보 사이트 등을 통해 누군가의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엄청나게 쉬운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종된 자식의 흔적을 찾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손만 뻗으면 딸의 실종에 대한 단서들이 수중에 들어오는 것을 보며 통쾌하고 신기했지만, 반면 저렇게 쉽게 불특정 다수가 특정인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유쾌하지 않았다. 경찰보다 SNS 회사가 더 나은 정보력을 갖고, 그 회사의 사장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블랙 미러 - 스미더린"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그런 신과 추종자들이 만든 세상 속 우리 같은 개인은 놀랍게도 무기력하다. 소중한 정보들을 자진 납세하고, 그들이 보길 원하는 광고나 콘텐츠를 보게끔 유도당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비난하고 혐오하게 된다. 인터넷 공간이 아니라 현실 세상이었다면, 조금 더 양심있고 자비로운 개인들이었을 것이고, 집단을 선동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컴퓨터 화면"이라는 신선한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터넷 세상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가공해서 보여준 것이 아니라, 현실의 순한 맛 버전으로 보여주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현실은 영화보다 잔혹한 법이다. 더욱 잔인하게 약자를 상처입히는 곳이고, 남의 신상 정보를 손에 넣기도 훨씬 쉬운 공간이다. 나에게 이 영화는, 인터넷이라는 지옥도에 대한 경각심을 한층 더 쌓아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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