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고 마블의 매니아인 나는 바로 1년 치 구독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한 달에 8천 원 남짓 하는 돈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미디어를 볼 수 있는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인류도 쉽게 누리지는 못했을 호사이다. 문제는 수없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진짜 보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둘러앉은 자리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친구들은 퇴근하고 나서, 혹은 주말에 아무 생각 없이 쉬거나 잠을 자기 바빠서 30분짜리 드라마조차 진득하게 집중하기 어렵다고 했다. 친구들의 간증 덕에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병이나 도파민 내성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그냥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안도했다.
집중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집중하지 않아도 재미를 주는 것 투성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몇십 년 전 라디오를 죽인 TV는 요새는 인터넷 매체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 유튜브랄지,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따위의 것들에 의해서 말이다. 멍하게 틀어놓고 보기에는 아직 TV만 한 게 없다고는 생각한다. 계속 다른 내용이 나오니까. 하지만 정작 인터넷 쇼핑을 하게 하는 것은 유튜브에서 본 무언가 때문이다.플레이리스트에 집어넣는 최신 곡들은 인스타그램이며 틱톡에서 들은 것들이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런 매체들은 집중할 찰나조차 필요없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그런 것들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결국 집중하지 않아도 내용을 알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만 찾고 만다. 영화 한 편을 진득이 보려면 영화관 같은 곳에 가야만 한다. 영화관이라는 장소, 그리고 주변 관객의 존재로 인한 에티켓 준수 같은 것들 때문에 두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집에서 영화를 틀어놓는다면 10분만 지나도 핸드폰을 보고 싶어지는 바람에 그렇게 집중해서 볼 수 없을 것이다. 노래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앨범들의 타이틀곡만 듣는 것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만 보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는데 -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 등에서 영화 10분 요약 영상이 성행하는 세상이기는 하다... - 요새는 하이라이트라는 그 타이틀곡의 1절까지만 듣고 무의식적으로 다음 곡으로 넘겨버리고, 넘겼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놀랄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점점 더 집중할 수 없는,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다음 자극을 찾아 나서는 인간이 되고 있는 중이다.
그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글을 완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재미있는 영화나 좋은 곡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마당에, 재미도 없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글쓰기라는 일에 진득이 매달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 집중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집중하지 못해 유튜브 창을 몇 번을 켰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이 자연스럽지 못한 일을 계속하고, 딴 길로 새다가도 자신을 다잡는 것이다. 나이 먹으며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탓도 있을 것이고, 집중하지 않아도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에 사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집중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언가에 집중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재미없고 지루하고 집중하기 힘들지만 결실은 꽤 멋지고 진솔한 취미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힘들지만 계속 산만함을 뿌리치고 글쓰기에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