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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Dec 05. 2021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계속 간다면

 "천 가지 발차기를 한 사람은 무섭지 않지만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한 사람은 무섭다."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천 가지 발차기를 할 것 같지는 않지만,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은 할 수 있을 것도 같은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 문장은 높은 확률로 성실함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근면하지 못한 내가 저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방향을 갖고 사는 개인을 묘사하는 문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노래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못하는 편이 됐다. 어쨌든 나이를 먹기도 했고, 또 예전처럼 꾸준히 노래를 연습하지 않으니까 실력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기타를 잡는다던지 노래방에 간다던지 하면 요새 노래는 부를 수가 없는 까닭이다. 그렇게 부를 노래가 없을 때면 예전 밴드 동아리 시절 합주한 곡들을 부른다. 그럼 노래가 술술 나온다. 그런 노래들이 나에게는 천 번은 아니더라도 이백 번쯤은 한 발차기이기 때문이다. 노래라는 발차기를 이백 번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잘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참 공부를 해야 했을 대학생 시절 공부는 뒷전으로 둔 채 동방에 틀어박혀 노래만 한 것은 자랑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좋아하는 것이라면 힘들지라도 천 번을 할 수는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음악 하는 게 좋아서 합주를 하고 공연을 하는데 20대 절반을 써 버렸고, 글 쓰는 게 좋아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꾸준히 글을 썼다. 따로 마음을 다잡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래도 글도 내 스타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수많은 글에서 끝없이 이야기한 바가 있지만 들었을 때 기분 좋은 말 중 하나가 "나답다."는 것이다. 꾸준히 한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것이 결국 남들에게는 없는 나의 어떤 특징을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나 노래 부르기만큼 멋진 것은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고 내세울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수능 과목 중 언어와 외국어영역이었다. 언제부턴가 두 과목의 모의고사를 이틀에 한 개 꼴로 풀고 있었다. 1학년 때 2학년 문제집을, 2학년 때는 3학년 문제집을, 3학년이 돼서는 온갖 어려운 문제집을 사다가 풀었다. 당연하게도 두 영역은 훌륭한 성적을 받았다. 물론 내 20대가 다소 암울했던 이유는 내가 이과였고 수학과 과학은 언어와 외국어만큼 잘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나는 하기 싫은 열 개의 발차기를 연습하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한 개의 발차기를 천 번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잘하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전공을 택했지만, 졸업은 어떻게 해냈다. 하지만 졸업만 해냈기에 전공을 살리고 싶지도 않았고 살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잘하는 것, 꾸준히 했던 것에 매달려보기로 했다. 언어와 외국어영역 공부를 하듯 전공과 무관한 사무직렬의 공채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운이 너무나도 좋게 합격했고, 이렇게 밥을 벌어먹고 살아가고 있다. 잘하니까, 좋아해서, 계속 추구했던 무언가가 결국 내 인생의 자그마한 활로나마 뚫어주는 무언가가 된 것이다.

 "이거 해서 뭐하겠어." 하는 태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자그마한 방향성이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갖는다면, 결국 그것은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어디로든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방향성을 갖고 한 노력의 결실은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써먹을 데가 있기 마련이다. 뭔가를 할 줄 알아서 나쁠 것이란 건 별로 없는 세상이라 생각한다. 조금이나마 방향성을 가지고 돋아낸 가시가 희박한 기회나마 붙잡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 붙잡은 기회라는 것이 일상의 작은 기쁨일 수도, 인생을 바꿔놓을 큰 찬스일 수도 있다. 그런 수확의 시점마다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 또는 헛된 노력은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싶다. 또한 내가 가져온 방향성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며 나아가고 싶다. 그렇게 나다워지고, 나답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너지를 이루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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