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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ug 14. 2022

길고양이 급식

"우리밀씨,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회사 현관 앞 고양이 급식소에 줄 사료가 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오른쪽 뒷다리 한 마디가 없어 절뚝이며 걷는, 오므라이스 색깔의 고양이가 오므라이스처럼 현관 앞에 퍼질러 누워 밥을 달라고 시위 중이라는 것을 뜻한다. 팀장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저 고양이가 항상 저렇게 배가 고프면 현관 앞 박스에 퍼져있더라고. 근데 밥 주는 직원들한테 물어보니 밥을 안 준지 이틀 쯤 됐대. 내일은 토요일이고, 월요일은 하필 쉬는 날이잖아. 삼 일을 더 굶으면 저 고양이는 죽을지도 몰라. 그러면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

 그러면서 팀장님은 본인의 카드를 건네신다. 우체국에 들러서 우편 발신 업무를 하고, 잡다한 비품을 사러 마트에 들를 때, 고양이 사료도 하나 사 오라는 의미인 것이다. 나는 다리를 저는 떠돌이 고양이에게 밥을 내어주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동참하고 싶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출장 용무가 한 줄 더 늘어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회사 앞 고양이 급식소라니, 귀엽고도 훈훈한 것 같아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 친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친구는 문득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분명 처음에 밥을 챙겨주기로 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한번 챙겨주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끝까지 제대로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시사할 점이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단발적인 호의는 무관심보다 잔인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책임지겠다는 것은 손쉽게 남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떡하겠어 싶기도 하다. 책임지기로 한 사람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과, 밥을 사 오는 사람이 모두 다른 상황이지만, 그래도 다친 길고양이를 위한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고, 어쨌든 그들 덕에 이 고양이 밥그릇에는 계속 사료가 채워지고 있으니까.

 확실히 굶은 지 이틀이 된 게 맞는지, 다가가면 저 멀리 도망가버리던 녀석은 사료를 들고 밥그릇으로 향하는 나를 다섯 발자국 떨어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밥은 굶지 않는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생각하며 사료를 밥그릇에 쏟았다.

 "우리밀씨,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사실은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요? 하고, 팀장님이 다음에 같은 질문을 하시면 되물어볼까 하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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