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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Aug 20. 2022

도시를 떠나 다시 시골로

 공기업의 숙명인 첫 발령지 지방근무를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마치고 경기도로 향하는 행운이 찾아왔을 때, 얼떨떨한 마음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갑자기 날아드는 행운은 항상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게 행운이 맞기는 한지에 대하여.

 작년 8월에 경기도 관할 본부에 발령받은 나는, 그다음 해 7월에 다시 내가 일하던 지역본부로 발령을 받게 된다. 발령 난 게 무슨 일이냐는 몇 개의 연락들이 있었다. 연락을 계속 주고받던 사이는 아닌 이들의 연락. 그리고 탈출 축하한다며, 내 손으로 지원한 거 맞지?, 묻는 연락들도 있었다. 나와 종종 연락을 해서 내 상황을 알고 있던 이들의 연락. 그토록 요원하던 서울과 멀지 않은 곳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쥐었지만, 그것을 1년도 안 되어 내려놓게 된 것은 쥐고 있던 순간순간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일했던 곳의 업무량은 누구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한창 개발 중인 도시였기 때문에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에 더해 인적 구성까지 최악이었다. 동료로 느껴지지 않는 이들과, 동료라 생각했는데 면전이든 등이든 칼을 꽂는 이들뿐이었다. 그것은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태어나 자란 고향도 아니고, 본가가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바라보고 올라온 대학 시절 친구들은 다들 자기 인생을 꾸리고 정착할 준비를 하려 바빴다. 일은 힘들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었다. 어느 순간 괜히 여기 올라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곧 그 생각은 다시 돌아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자랐다. 한 번 머릿속을 차지하며 자라나기 시작한 생각은 뽑아내기 어려웠다. 관리자 몇 명에게만 보고 후 지방으로 인사이동을 지원했다.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냈다. 계속 경기도에 있을 것처럼. 그냥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도 있고, 괜히 발령이 안 나 버리면 이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또 무슨 말을 돌리고 나를 어떻게 괴롭힐지 걱정되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대망의 인사발령 날. 발령장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다시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는 발령장. 웅성이는 사무실. 나는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3일의 신변 정리 시간이 주어졌지만 3일 휴가를 냈다. 잘 지낸 몇 사람과 제대로 작별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 슬프기는 했지만, 꼴도 보기 싫은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덜 보고 싶었고, 꼴보기 싫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건물을 조금이라도 덜 딛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경기도 모처의 그 건물을 떠나 1년도 안된 시간 전 떠나온 그 지역본부로 향했다.

 전입을  인원은 오지로 보낸다는 지역본부의 내규는  알고 있었기에 도시권은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예상대로 지도  동네로 발령받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 이 지역본부에서 근무하던 동네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동네로 발령받게 되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같으니 간략하게 감상을 말하면 나는  발령지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다. 지도  동네니까 심심하기는 하다. 하지만 주중에 도시의 삶을 즐길  있는 것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은 차였다. 여기에 만족하는 가장  이유는 거기에는 없었던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팀이라는 의식.  사람들을 위해서는 내가 무언가를 감수할 수도 있을  같다는 생각. 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 그런 것들이 여기에는 있다. 눈곱만   하나라도   하려고 역정을 내거나, 나이며 서열을 토대로 일을 떠넘기려는 인간이며 상황이 여기에는 없다.

 "처음에 발령장 보고 무슨 사고를 친 사람이 여기 오는 거지 했어요."라고, 지금 일하는 곳의 후배 하나가 허심탄회한 술자리에서 고백했다. 그만큼 윗 지방에서 아랫지방으로 오는 일은 잘 없으니까. 이게 옳은 결단인지는 어쨌든 벌어진 사건과 가까운 지금 이 시점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있는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그 생각이 맞는 것 같다면, 최대한 빨리 저질러야만 한다는 생각이,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커졌다. 왜냐면 나는 지금 행복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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