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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Jul 12. 2021

달리는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평생을 운동과 거리를 둔 채 살아온 내게 달리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벼운 운동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본격적인 운동인 달리기를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애매한 거리의 신호등 초록불조차 나를 뛰게 하지는 못했다. 평생을 그래오던 내가 제대로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달리는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시작은 무작정 뛰어보는 것이었다. 철저히 패션 목적으로 산 애플 워치를 차고, 그나마 발이 편한 에어포스 1을 신고, 한적한 동네 운동장으로 향했다. 한참 뛰고 나니 종아리가 당겨와서 뛰기 힘들었다. 얼마나 뛰었지 하고 쳐다본 애플 워치에는 200m라고 써져 있었다. 측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버리기엔 기술은 많이 진보해 있었다. 그렇게 하루 건너 하루씩 일주일 정도 뛰었다. 여전히 종아리가 당겼지만 참고 뛸 만했다. 하지만 이번엔 숨이 차오르는 문제가 있었다. 평생을 안 뛰었으니 여기저기 삐걱대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계속 달린다고 이 삐걱거림이 줄어들지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괴로운 걸 건강해지자고 매일 해야 한다니, 행복해지려고 운동을 하는 것인데 그러려고 괴로움을 참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하여금 평생 운동을 하지 못하게 한 그 알고리즘이 또 시작되려 했다.

 어쨌든 그 시기를 지나 한 달 반쯤 되어서 보니, 운동과 거리두기 알고리즘은 잘 탈출한 것 같다. 평생을 사로잡혀 있던 그 알고리즘에서 어떻게 벗어난 걸까.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긴 하다. 러닝화를 산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이왕 뛰기로 한 거, 이번에는 조금 달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7만 원 정도 하는 러닝화를 샀다. 처음 러닝화를 신고 뛰었을 때 헛웃음이 난 기억이 난다. 갖고 있는 신발 중 가장 편한 신발을 신고 뛰는 것보다 러닝화를 신고 뛰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뛰는 게 편해졌고 그래서 더 열심히 뛰게 되었다. 열심히 뛸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애플 워치다. 얼마나 뛰었는지,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 얼마나 더 뛰어야 하는지, 애플 워치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숫자를 통해 점점 잘 뛰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성취감을 느꼈다. 숫자들을 채우고, 더 나은 수치를 얻기 위해 더 열심히 뛰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평생 원수처럼 여겼던 운동이 마치 게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식상하지만 이번엔 정말 달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한 번 사는 건데 제대로 자기 관리를 해 보고 싶기도 하고, 평생 운동을 못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지긋지긋함을 느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래서 귀찮아도 러닝화를 신고 운동장으로 향했고, 그만 멈추고 싶어도 뛰어야 하는 만큼 이를 악물고 뛰었다.

 한 달 반을 꾸준히 뛰고 나니 뛰기 전과 몇 가지가 달라졌다. 먼저 이제는 3km를 넘게 뛰어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숨이 가빠지지 않는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달리기는 내게 괴로움이었는데, 이제 내게 달리기는 인내심이다. 권태와의 싸움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아무튼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천천히 짧은 거리를 뛰는 것은 할 만한 일이 되었다. 더 발전할 수 있는 베이스를 마련한 것이다. 필요 없는 군살들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다이어트니까,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살을 빼서 건강한 몸을 얻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인데, 몸 건강은 눈에 보이기 애매할 정도로 조금 진전이 이뤄진 반면 마음의 건강은 체감이 될 정도로 크게 달라졌다. 예전처럼 고민하고 걱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게 되었다. 뭔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의연하게 되었다. 몸이 고단해서 고민할 힘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호르몬 때문인지, 아무튼 좀 더 여유롭게 주변을 바라보게 됐다.

 나의 달리기는 많은 달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에서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한 달 반을 달린 결과, 달리는 것은 내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더 멀리,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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