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일만 계속하고 싶어 하는 다소 야비한 천성을 가졌기 때문일까, 못하는 것을 열심히 해서 잘하는 것으로 만든 기억이 별로 없다. 잘하지 못하는 일 중 하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저항하는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잘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슬픔을 털어내고 굳세게 할 일을 한다던지, 인생의 슬럼프를 이겨내고 잔잔한 일상을 다시 쟁취한다던지,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슬프면 방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느라 몇 시간을 날리고, 아홉 시도 안 된 시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는 것으로 현실을 도피하곤 했다. 슬럼프를 이기게 하는 것은 도피, 단순한 오락, 혹은 플루크로 생겨난 즐거운 일, 그런 것 따위였다. 스스로의 동력으로 곤경을 탈출한 적은 없이, 그냥 물 흐르듯 살아왔을 뿐이다.
부정적인 물살에 저항하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항상 "내일은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지."같은 말을 되뇌기는 했다. 다만 그런 의지가 부정적인 생각을 역행할 만한 힘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런 실낱같은 긍정적인 생각이 가끔 부정의 물살을 거스르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의 일이다. 요즘처럼 너 나할 것 없이 운동을 하는 시대에, 운동을 한다고 말할 강도의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평생 운동과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아오다가 꾸준히 운동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성취라고 생각하기에, 운동을 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꾸준하게, 그리고 익숙해진 뒤에는 점차 강도를 올리는, 두 원칙을 확실히 지키며 운동을 하고 있다. 매일 하루를 정리하며 땀을 흘리는 것이 기분 좋고, 자기 관리를 위해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점차 운동 강도를 올리다 보면, 저번 주까지는 안 되던 강도의 운동이 어느새 가능해지고, 성장했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몸이 건강해짐과 동시에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운동이란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발굴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가기 싫은 몸을 이끌고 문 밖으로 나가고, 지쳐서 쉬고 싶은 몸을 다잡고 하루 할당량을 채운다. 어쩌면 내일의 나, 다음 주의 나, 다음 달의 나는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삶과 다르게, 부정적인 감정을 물리치는 일이 나의 삶에도 이따금 일어나게 되었다.
운동이 나의 삶을 조금은 밝게 만들어준 데에는 물리적인 요인이 있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또 몸이 바뀌게 해 주니까. 하지만 정신적인 요인 역시 있을 것이다. 평생 잘하는 것에만 매달리고, 못하는 일은 외면하며 살아온 내게, 저번 주에 하지 못한 것을 이번 주에는 가능하게 하는 운동이라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자 새로운 가능성이다. 내일도 나는 비록 퇴근 후 피곤에 절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몸이지만, 런닝화를 신고 운동장으로 향할 것이다. 조금 더 오랫동안 빠르게 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 더 멋진 미래를 그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