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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May 18. 2016

브런치 작가가 되기까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

 전역 이후의 삶은 딱히 즐거울 것이 없었다. 복학 전까지는 좋든 싫든 학교와는 멀리 떨어진 본가에서 지내야 했다. 복학 후에는 원치 않는 전공을 이어가야 하는 슬픈 미래가 놓여 있었다. 지긋지긋한 군생활만 끝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나는, 하루하루 머릿속에서 솟아나는 잡념들과 싸우며 침전의 일상을 살아갈 뿐이었다. 그나마 합주를 위해 2주에 한 번씩 서울을 올라가는 것, 그리고 주로 붙들고 있는 핸드폰의 SNS가 유일한 감정 해소의 장치였다.


 평소 나의 태도가 묻어나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글의 태도는 꽤나 진지하다. 남들에게는 가벼운 일상 글조차도 그렇다. "진지충" 따위의 말이 범람하는 페이스북에는 일상글을 그만 올려야겠다고 다짐한 이유이다. 누군가는 그런 무거운 일상글을 좋아해준다. 이따금 좋은 피드백도 온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꽤나 사회적인 SNS인지라, 나와 조금만 아는 사람들도 죄다 내 글을 읽게 된다.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어 타임라인에 글을 올리는 힘이 되었지만, 그것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관계의 사람들, 그리고 가벼운 댓글로 피드백의 장을 망쳐 버리는 사람들, 그런 존재들은 페이스북을 놓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히, 줄어든 감정의 배출구는 조금씩 망가지는 일상으로 이어졌다.


기차여행, 그리고 락페스티벌로, 잠시나마 나의 일상은 평온을 찾았다. 많은 것을 느꼈고, 그것들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있던 시기이다. 문득 여행기를 쓰고 싶어 졌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반쯤 접은 상태였다.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이 그때였다.  다 죽어가던 블로그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여행과 락 페스티벌에 대한 글을 썼다. 한번 물꼬를 튼 글은 다른 글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쓴 물건들,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리뷰도 올리고, 음식점, 장소에 대한 후기도 썼다. 틈틈이 내 개인적인 생각에 대한 글도 채워 넣었다. 브런치 작가 지원을 하며 블로그를 되돌아보니 대단하지는 않지만 뭔가 어정쩡하게, 그러니까 남에게 보여 줄 건덕지가 있는 정도의 글은 채워져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런 꾸준한 블로그 활동에 제동을 건 것은 무의미한 이웃추가, 그리고 광고 댓글들이었다. 결정적인 댓글은, 카레집에 관한 후기를 올렸는데, 댓글로 자신도 피규어에 관심이 많다면서 이웃추가하겠다는 그런 것이었다. 이렇게 이웃추가를 하고 댓글을 다는 게 사람이긴 한가, 검색로봇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글을 읽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카운터 숫자를 올리는 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독자가 없는 글은 관객이 없는 공연처럼 점차 의욕을 잃게 하였고, 결국 블로그도 반쯤 그만두게 되었다.


 익명의 트위터 계정에 짤막하게 잡념을 적어 올리는 것이 전부. 그렇게 나의 주된 감정 배출구의 하나이던 글쓰기는 자연히 삶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일상은 조금 더 빠르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감정은 주변인들에게 향하기 시작했고, 해야 할 일을 놓는 것으로 해소되곤 했다. 어느새 일상은 내가 눈치챌 수 있는 수준까지 망가졌고, 그 시점이 되자 나는 그 악순환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는 여행기를 올리는 친구가 있어 예전부터 알고 있던 플랫폼이었다. 글을 쓸 계기가 필요했고, 브런치 작가 신청이라는 시스템은 좋은 방아쇠 같았다. 붙으면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그만이고, 떨어지면 블로그에 더 글을 써서 다시 신청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을 적어놓았는지조차 가물가물한 블로그를 첨부하고,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미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그 해방감에 젖어 들어 수업 하나를 결석하고, 거금을 들여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약간은 더 삶의 균형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오합지졸인 나의 블로그가 받아들여진걸 보면 작가 신청은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가진 것이 과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음에 신은 당신의 몫을 줄일 것이다." 같은 대사가 나왔던 연금술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러한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저 처음의 의도만을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글을 쓸 공간이 마련되었고, 이제 예전보다는 자주, 그리고 다듬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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