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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Oct 21. 2016

설레는 새벽 공기

시험기간을 털어내는 글


Honne : 3 AM


 공부하면서 밤 샌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거의 시험기간 내내 밤을 샜다.


 잠을 포기하면서 공부를 하는 삶은 너무 삭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 3 수험생때도 밤을 샌 기억이 전혀 없다. 공부하느라 밤을 샌다고 해서 성적이 얼마나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해야만 성적이 잘 나온다면 차라리 잠을 챙기고 적당한 성적을 받는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학기는 무엇이 절실해서 밤을 샌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압박감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밤을 새야겠다는 생각에 그랬다. 시험 기간이 되면 공부하는 무리들과 섞이지 못한 채 집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 무리에 섞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열람실의 공기는 약간 포근하면서도 어딘가 축축해서, 약간은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책상 앞에 나를 붙여주는 역할을 했는지, 아니면 그대로 엎드려서 잠을 자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감상을 받았다. 시험 기간이 끝난 지금 생각해보니 밤을 샌 것은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보통 받을 점수보다 5점에서 10점 정도 잘 받은 느낌이랄까. 잠을 희생해가면서 점수를 얻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잠보다는 점수에 더 가치를 매기게 된 것일까. 못 잔 잠이 아깝지는 않은 느낌이다.


 격렬했던 96시간을 지나 카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카페에서 좋은 노래를 찾았다. Honne라는 영국 2인조 뮤지션의 3 AM이라는 곡. 새벽에 수 많은 수식, 화학 반응, 생물의 구조와 시스템 등을 외웠는데, 벌써부터 기억 밖으로 흐려지는 느낌이다. 다만 후덥지근한 솜이불 같은 열람실의 공기를 걷어내고 나와, 새벽 찬 공기에 잠을 깨우며, 친구와 전화를 하며, "새벽 찬 공기는 설레이는 공기네. 온 몸에 피가 도는 것 같아."라고 했던 표현만은 뚜렷하게 생각난다. 그 시간도 세 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알고 있으면서. 삶이란 결국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번 시험은 꽤 잘 이겨냈다. 삶이 더이상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모처럼 찾아온 한가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 마치 후끈한 열람실 공기에 무너져 내릴 것 같던 몸을 설레는 새벽 공기로 다잡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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