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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Dec 16. 2016

종강이 내게 가져다준 것

생각만큼 기쁘지는 않은

 시험 기간동안 밤샘공부를 하면서,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책보다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할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가장 많이 든 생각은 글을 더 많이 써야겠다는 것. 그 외에 자질구레한, 방학동안 갈 여행 계획 짜기, 기타 줄 갈고 더 열심히 연습하기, 노래 더 많이 녹음해보기 등. 시험에 가 있어야 할 나의 관심은 이미 그 너머에 있는 종강에 꽂혀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종강이란 낙원과도 같았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시험을 치고, 집에 왔다. 생각만큼 기쁘지는 않다. 할 것들에 대해서는 잔뜩 생각해 뒀는데, 며칠간 해결하지 못한 잠이 갑자기 밀려든다. 시험때문에 들락날락거리기만 했던 집에는 설거지감에 빨래감이 가득하다. 치울 수 있는것을 최대한 치우고, 빨래까지 다 돌리고 나니 몸이 도저히 버티지를 못할 지경이 되었다. 침대 위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일어나보니 애매한 저녁 10시. 점심도 먹지 않아 배가 엄청나게 고픈 상태. 내일 증명사진을 찍으러 가야 하기 때문에 치킨 같은것을 시킬 수는 없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애매하게 한시간 반을 보내 버리고, 결국 찬장을 뒤져 라면같은 파스타를 만들었다. 학점이 떴나, 공포 영화에서 문틈 너머를 들여다보는 주인공처럼 학교 포탈을 뒤져 보았지만 아직 올라온 건 없다. 학점을 어디까지 망칠 수 있는지 실험해본 학기, 성적이 전혀 기대되지가 않는다.

 종강을 했지만 딱히 이번 학기에 새로 사귄 친구들과 만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1학년 수업을 들었는데, 스물다섯과 스물의 사이에는 정말로 친해지기에는 어려운 어떤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다.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러내서 놀 만큼 친하지는 않은, 그저 그런 사이인 인맥이 조금 생겼을 뿐이다. 새로운 친구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셈이다.

 낙원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종강의 첫 날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잔해들을 치우는데서 오는 피로감, 그리고 성적도 인맥도 제대로 얻지 못한 데서 오는 회한에, 두 끼를 미룬 데서 오는 극심한 배고픔, 그리고 라면 수준으로 대충 버무린 뻑뻑한 집 파스타로 수놓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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