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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Dec 25. 2016

감기에 기대어 보낸 크리스마스

감기에게 고마워해야겠다.

 최근에 알게 된 실용음악 보컬 전공인 친구에게 공연 날마다 찾아오는 감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마치 공연날을 몸이 아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 표현을 감기로 하는 것 같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공연 3일 전부터 목을 꽁꽁 싸매고 다니고, 평소 안 마시던 몸에 좋다는 마실거리를 챙겨 마시고, 술도 끊고 잠도 일찍 자고, 갖은 노력을 해도 공연날 아침이면 목을 찔러오는 불편감과 마주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7월에 밴드를 그만둔 내게 음악이란 듣는 것, 그리고 가끔 방구석에 앉아 혼자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 그 쯤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는 꽤나 매력적인 장소여서, 발을 들이다가 끊으면 계속 그리워지는 그런 곳이었다. 친구들의 공연을 보거나, 돈 내고 이름있는 뮤지션들의 공연을 볼 때면, 나를 보려고 선 사람이 없어도 괜찮으니, 그저 무대에 서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굳이 끊어버린 발길을 다시 잇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한 번 다시 들여놓기 시작하면 계속 무대에 서고싶어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친구를 통해 작은 동호회를 알게 되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말에 한 번씩 모여 서로 노래를 부르는 그런 곳이었는데, 어쩌면 밴드 활동을 하는 것 보다 내 성향에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부를 노래도 선곡해놓고, 참가 신청도 해 놓았다. 거의 반년만에 갖는 무대라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그리고 공연 당일날, 항상 가벼운 목감기 기운을 앓았었는데, 이번에는 예전에 겪은 적 없는 거대한 불편감이 내 목을 감쌌다. 노래는 커녕 제대로 말도 하기 힘든 수준의 감기였다. 크리스마스 전 주 토요일의 일이다.




 고향에 있는 동생이 독감에 걸려서 방에서 못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올 겨울 감기가 꽤 독한 것 같다는 생각 정도는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 삶에 찾아오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말 지독한 감기였다. 나름 몸 관리를 괜찮게 해 줘서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완벽하게 낫지 않았고, 밤이면 잔기침 때문에 열 번은 넘게 깨야만 했다. 처음 병원에 갔을때 받았던 세 알의 약은 두 번째 갔을 때는 여섯 알로 불어났다. 부비동염이라는 병명 역시 추가되었다. 고름 냄새가 스믈스믈 올라왔다. 종강을 했지만 술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퇴근하고는 저녁 시간을 즐길 새도 없이 바로 침대에 누워야 했다. 열두시를 조금이라도 넘겨 잠들면 다음날 아침 증세가 도졌다. 이번 감기는 나를 완전히 뭉개 버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잊어버릴만 하면 내 발목을 붙잡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게 더 성가셨다.


 지독한 감기와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술약속은 커녕, 밖에 제대로 나가지조차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집에서 차 끓여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쓰거나 하는 이틀의 반복이다. 그런데 사실 별로 나가고 싶은 약속이 없던 참이기도 했다. 집에만 있으니 감기도 한결 나아져서, 완전히 요양하는 신세가 되었다. 남들이 모두 밖에 나가는 날 밖에 못 나가는 것을 아쉬워해야 하는데,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못 나가는 모양새다. 문득 억지로 모임에 참여하지 않게 해준, 그리고 여느 커플들처럼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지 않게 해준 감기가 고마워진다. 잠들 순간이 되면 또 나를 괴롭혀 오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은 감기에 기대어 평온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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