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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Jan 04. 2017

따뜻한 음식이 끌리는 계절

부족한 온기를 채우기 위해

 제목의 배경에 있는 호떡이 이 글을 쓰는데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다. 요새 글을 써야겠다 싶은 날이면, 초콜릿 대신 내 당 보충을 책임지는 친구이다. 흠이라면 노점이 문을 너무 빨리 닫아 버린다는 점. 조금이라도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보면, 노점이 문 닫는 시간을 넘겨서 먹을 수 없게 돼버린다.


 고3 때까지는 길거리 음식이라거나 배달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몸에 좋지 않다고 잘 먹지 못하게 하는 가정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리 집에서도 겨울에는, 횡단보도 건너 집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호떡집에서 천원에 네 개 하는 호떡을 사거나, 천원에 다섯 개나 여섯 개 정도 하던 길거리 붕어빵을 이삼천 원어치 정도 사서 가족들과 나눠 먹거나, 시장에서 돌아오신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는 순대를 받아서 먹거나 했던 것 같다. 길거리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모락모락 하얀 유혹의 김을 풍기며, 지갑 속의 현금을 확인하게 하는 그런 계절. 바로 요즘같은 겨울이다.

 벌써 1년 반째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장의 앞에는, 아주 저렴하면서도 푸짐하고 맛이 괜찮은 국수집이 있다. 따끈한 멸치육수에 담백한 맛을 가진 잔치국수와 새콤달콤하면서도 약간은 매콤한, 그리고 아주 푸짐한 비빔국수를 하는 집. 두 가지 메뉴를 기본 양으로 먹든 곱배기로 먹든 항상 4천 원을 받는, 요새는 잘 없는 그런 집이다. 나는 항상 그곳에 가면 날씨와 계절을 불문하고 - 사실 오늘 점심에도 - 비빔국수 곱빼기를 먹는다. 그 집에서의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는 마치 중국집의 짜장면과 짬뽕, 냉면집의 물냉면과 비빔냉면 같은 라이벌 관계이다. 그런 두 메뉴 사이에서 확고하게 비빔국수 취향인 나마저도, 가게 유리창에 김이 서리는 그런 계절이 되면, 주인아주머니가 아뜨뜨 하는 소리를 내며 들고 오는, 뼛속까지 따끈하게 해줄 것 같은 잔치국수에 흘낏흘낏 눈이 가게 된다. 확고하게 짜장면만 먹는 사람에게 짜장면 대신 짬뽕을 고르게 할 정도면 평범한 상황은 아니다. 나는 요즘 확실히 따뜻한 음식이 끌리고 있다.


 건대 후문 "이모네" 에서 떡튀순을 포장해온 날. 믿기지 않겠지만 저게 7천 원어치다. 그리고 분명 떡튀순만 시키는데 닭꼬치까지 포장해주신다. 가게에서 먹으면 오뎅도 공짜로 먹으라고 가끔 주시고, 먹다 말고 순대 간이며 염통이며를 추가해 주셔서 가게를 나설 때면 꼭 배가 터지기 직전 상태로 만들어 주신다. 가게에 찾아오는 단골 학생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정은 덤... 저번 학기에는 유독 1교시가 많았는데, 가끔 가게 문을 여는 이모님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이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 외에도 내가 따뜻한 음식에 끌리고 있는 사례는 많다. 시리얼이나 참치캔, 달걀 프라이 한 장으로 아침을 때우던 내가 괜히 새벽같이 일어나 따끈한 밥에 식사를 하고 나가게 한다거나, 냉면이나 샌드위치 같은 가벼운 식사를 선호하는 내가 괜히 국밥집을 찾게 된다거나, 분명히 자금 사정이 빠듯한데도 자꾸 길거리 노점의 호떡이며 타코야끼 같은 것을 손에 주렁주렁 들고 집에 들어오게 된다거나.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지고 있는 추운 날씨를 지나며, 본능적으로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추운 계절을 지나며 잃어버린 따스함을, 그와 비슷한 온기를 가지고 있는 음식으로 되찾으려 하는 것 같다.

 따뜻한 음식에는 온기가 있다. 일단 물리적으로 따뜻하다. 뜨뜻한 음식이 들어가면 몸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그런 음식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해 준다. 새벽잠을 포기하고 부산하게 차린 따끈한 아침상은, 자취하느라 홀로 먹는 차디찬 식탁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화목하게 먹었던 옛날의 밥상이 겹쳐 보이게끔 해 주어 가족의 따스한 온기를 추억하게 해 준다. 길거리에서 사 든 붕어빵이며 호떡은, 눈 오는 날 친구 여럿과 늦게까지 놀며 거리를 헤매다가, 잠시 숨을 돌리려고 들렀던 거리 포장마차, 거기서 느꼈던 따뜻함과 안락함, 그런 것들을 추억하게 해 준다. 어쩌면 추운 겨울날 차가워진 마룻바닥 위에서 혼자 먹었어야 할 저녁 대신, 집 앞 시장 국밥집, 그리고 떡볶이며 순대며 호떡을 파는 노점에서 건네는 주인아주머니의 따스한 한 마디, 그리고 얹어 주는 덤 같은 것들은 이 추운 계절을 지나며 잃어버린 따스함을 채워 주는, 이 계절을 더 잘 날 수 있게 해 주는 것들이다.


 건대 후문 트럭 노점에서 파는 타코야끼. 타코야끼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잘 사 먹지 않았었다. 군대 가기 이틀 전인가, 친구들과 함께 여기서 타코야끼를 사 먹는데, 친구들이 이 녀석 군대 가는데 타코야끼를 좋아한다고 서비스 좀 달라고 장난스레 건넨 말에, 주인아저씨의 대답이 전역하고 사 먹으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역하고 1년 반 지났을 때쯤 술을 먹고 매우 들떠있는 상태에서야 드디어 사 먹었다.

 노원역에 있는 분식집. 3900원. 경양식 스타일. 양이 아주 많고, 정통 일식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추운 거리를 걷다 보면 생각이 나서 군자에서 노원까지 가게 하는 녀석이다.

 광화문역에 갔을 때 친구와 먹었던 해장국. 날이 유독 추웠고 감기까지 걸려 있었는데, 이걸 먹고는 밖에 잘 걸어다녔던 것 같다. 만 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을 감수하고 먹을 만 한, 고향이 생각나게 하는 맛이었다.

 글 쓰다 말고 호떡이 너무 생각나서 길거리로 나섰는데, 시장 거리의 호떡집이 문을 닫아서 옆집에서 호빵을 사 왔다. 그 호떡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한 대체재를 발견했다. 최근에 먹은 호빵은 편의점에서 꺼내 주는 그런 것들이라서 모처럼 먹는 수제 호빵이 신선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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