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배들과 나의 친구들과 나의 모습을 우습게도 떠올리며
퇴근 후 마트에 들러 가볍게 볼일을 보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넛 가게며 아이스크림 가게며 하는 것들을 지나 밖으로 나가는 유리문 바로 왼편에는 백화점의 식품매장이 들어서 있다. 마감 시간이 되어 음식들을 잔뜩 진열해 놓고는, 하나라도 더 팔아치우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상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약간은 우울한 하루를 보냈기에, 맛있는 것이라도 먹으며 저녁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냄새에 이끌려, 소리에 이끌려 식품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초밥, 어묵, 분식, 샌드위치, 부리또, 캘리포니아 롤 같은 음식들이 불이 다 꺼진 채 정리 중인 매장 앞의, 약간은 차가워 보이는 가판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것을 꼭 팔고 퇴근하겠다는 결심을 한 모양인지, 상인들의 목청은 점점 커졌다.
“5개 만원에 드립니다!”
나는 여유롭게 매장을 둘러보았다. 5천원이며 6천원의 가격표를 붙인 음식들은 반 값도 채 되지 못하는 가격에 누군가 자신을 집어가기만을, 약간은 시무룩한 자태로 어필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리해놓은지 꽤 되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음식들은 5천원을 주고 사 먹기에는 약간 모자란 느낌이었다. 그나마 개당 2천원정도의 가격이 붙여진 지금이라면 사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었다. 결정을 잘 하지 못해 매장을 두 세 바퀴 도는 동안에도 음식들은 거의 그대로였다. 딱히 집어 가려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만원짜리 지폐를 내고 캘리포니아 롤 세개, 연어 샐러드 하나, 로스카츠 하나를 집어왔다. 너희 이렇게까지 해야 팔리는 녀석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졸업하고 아무 곳도 가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나의 선배들과 동기들이 떠올랐다.
뭘 모르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소한 단어 선택을 잘못해서 꾸중을 듣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 사람에게 “스펙”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혼난 것이다. 컴퓨터나 핸드폰에나 써야 하는 단어라며, 그 당시 국어 선생님께서는 나를 나무라셨다. 그런 식의 표현은 사람 하나하나를 너무 상품처럼 취급하는 것 같다며, 내게 그런 표현을 자제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7여년 뒤의 나는 가판대 위의 팔리지 않아서 가격을 절반 이상이나 깎은 음식들을 보며, 졸업하고 아무 데에도 팔리지 못한 나의 선배며 친구들을 우습게도 떠올리고 있었다. 사람을 상품처럼 여기지 않겠노라고 10대 시절의 나는 대답했지만, 스물 여섯이 된 나는 가판대의 약간 굳은 캘리포니아 롤을 보며, 마감 시간 직전까지 가판대 위에서 식어가다가, 할 수 없이 삼 분의 일 정도 되는 가격에 팔려나가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인간의 존엄함에 대한 생각은, 마감 시간 전에 팔려갈 수 있는 인간인가 하는 두려움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낯설은 풍경들이 지나치는
오후의 버스에서 깨어
방황하는 아이 같은 우리
어디쯤 가야만 하는지 벌써 지나친 건 아닌지
모두 말하지만 알 수가 없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에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어딘가에 팔려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위해, 혹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나와 주변 사람들이 살았으면 하는 생각과, 그것이 이뤄지기 힘든, 적당한 삶을 위해서는 미친 듯이 일해야 하는, 그런 미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섞여서 나는 많이 울적해졌고, 그런 까닭에 호화로운 식사를 하려 사 온 캘리포니아 롤은 소주 안주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