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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Apr 07. 2017

봄 감기를 담은 글

 약간의 불편감이 목을 감싸고 있은지는 꽤 되었지만, 그것이 내 삶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달고 살았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쿡쿡 쑤셔오는 목의 감각을 느낄 때마다 오늘은 병원에 가야지, 생각만 할 뿐, 겨를이 없기도 하고 시간이 없기도 해서 집으로 향하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학생 예비군 가는 날 아침. 일기예보 어플리케이션에는 잿빛 하늘 배경, 그리고 우산 모양 아이콘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횡재했네, 생각하며 버스에 올라탔지만, 비는 오지 않았고, 맑고 따뜻한 날씨에 무장해제된 내 몸뚱이를 찬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쳤다. 점심을 먹고 나니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더러운 우의를 뒤집어쓴 내 몸 위로 굵은 빗방울이 후두두둑. 그래도 훈련을 받느라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비를 맞는 도중에는.


 굶은 아침과 점심을 만회하기 위해 푸짐한 만두 닭칼국수를 먹고 집에 돌아온 뒤, 훈련받느라 입었던 옷이 집과 합쳐지는게 싫어서인지 빠르게 세탁기에 모조리 쑤셔박고, 시험기간이라 공부는 해야겠기에 조금만 쉬기로 하고, 세탁기가 끝나는 시간인 7시에 알람을 맞추고 침대 위로 무너졌다.


 전쟁터의 군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군복에 우의, 총을 들고, 언제든 총을 쏠 수 있는 자세로 하염없이 걷는 꿈이었다. 하늘은 잿빛을 넘어선 흑색이었고, 비는 방수 재질을 마치 마칭 드럼의 박자처럼 빠르게 두들겼다. 앞에 적은 없었고, 그냥 굵은 빗속을 계속 걷는 꿈이었다.


 문득 깨어나서 시계를 보니, 하늘이 꿈에서 본 것처럼 새까맸다.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 반이었고, 나를 찾는 메세지가 몇개 와 있었다. 알람이 제대로 울리긴 한 건지,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목의 불편감이 심상치 않았다. 기침이 나오고, 추위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이번 환절기는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결국 감기가 날 붙잡고 만 것이다.


 요즘같은 날, 감기는 정말로 날 힘들게 한다. 아침에 뭘 입어야할지부터 고민이 된다. 가볍게 입으면 너무 춥고, 잔뜩 껴입으면 한낮에 쪄죽을 것 같고. 간신히 옷을 챙겨입고 길을 나서면, 아침에 먹었던 감기약 기운이 나를 사정없이 짓누른다. 졸음운전을 할 때, 눈을 감으면 몇 미터 앞에 가있고 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몇 걸음 앞에 가 있곤 한다. 상쾌했던 등교길은, 너무나 험하고 힘든 길목이 되어 버린다.


 간신히 학교에 도착하지만, 책상에 앉으면 머리가 텅 빈다. 쏟아지는 잠에, 막히는 코 때문에 부족한 산소까지.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어진다. 그렇게 며칠 치 수업을 모조리 날려버린다. 간신히 머리에 주워 담은 것을 복습이라도 해야 하는데, 수업마저 듣지 않는 순간에는 나를 잘 수 없게 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져서, 노곤한 기운에 동아리방 소파에 살짝 기댄 등을 떼 보면 세 시간이 지나있곤 한다.


 낮의 따스한 햇빛과 아름다운 봄꽃은, 후끈거리는 한증막에 피어나는 열꽃처럼 보인다. 추울 때는 감기기운이 심해져서 힘들지만, 따뜻할 때는 따뜻한 대로 괴롭다. 이쯤 되니 감기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비 온 뒤 맑은 봄 마저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니. 피어나는 봄을 뒤로한 채, 자꾸 몸을 뉘일 공간이 있는 동아리방으로 향하곤 한다. 그러지 않으면 쓰러질 것처럼 노곤함이 내 어깨를 누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 글을 쓰는것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마당에, 뭔가에 대해 쓰는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감기에 걸리니 글은 쓰기 힘들지만, 감기에 걸렸을때만 잘 쓸수 있는 글은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봄 감기를 담은 글을 써 보았다. 제발 이 글에 지금 걸린 봄 감기가 온전히 담겨서, 내일 아침은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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