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섬, 그 풍경들
자연의 맛, 담백하고 솔직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여름날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 주었던 ‘자리돔’이다. 볕이 과랑과랑, 시원한 그늘이 드리운 평상 위에서 잠시 쉬어가는 한때가 최고로 느껴질 때, 생선은 지쳐가는 몸을 회복시켜주는 선물이었다. 아버지 오빠와 함께 자리돔을 먹으며 보낸 오후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미소짓게 하는 찰나의 행복이었다.
“과수원 다녀 올 테니 자리 장수 오면 500원어치만 사두어라.”
아버지가 일찍 일하러 나간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이웃집 김매기 작업을 도우러 갔다. 시골은 예나 지금이나 일손 부족에 시달렸다. 밭에 가면 이웃집 할머니가 엄마와 함께 일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수눌음이라는 품앗이로 바쁜 농사일을 헤쳐갔던 시절이었다. 어린아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바쁜 가을과 초겨울, 자고 나면 풀이 자라는 여름은 그 절정이었다. 여름 농사의 중요한 잡초제거는 여성의 일로 여겨졌던 탓에 마을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했다.
“오늘 자리 장수 소리 잘 들어야 돼. 알았지.”
중학교 1학년 오빠가 목에 힘을 주고 말한다. 80년대만 해도 마을에는 구멍가게가 전부였다. 지금의 대형마트는 상상도 못 했다. 항상 농사일에 바쁜 시골 생활은 자급자족이 몸에 배었다. 제사나 잔치 등 특별한 행사가 없는 날에 한 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타고 서귀포 장보러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어물을 파는 트럭 행상이 시골 마을을 공략했다. 여름에는 ‘자리돔’이 없어서 못 팔 정도의 히트상품이었다. 남원 포구나 공천포, 보목리 등 주변의 바다에서 새벽부터 건져 올린 생선은 더위 앞에서도 씩씩했다. 눈은 반짝이고 비늘은 탱탱했다. 점심 무렵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골목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자리를 파는 트럭이 부지불식간에 지나기 때문에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다.
오빠와 나는 귀를 쫑긋한다. 멀리서 기다리던 소리가 들린다.
“자리 삽서, 자리. 싱싱한 자리가 와수다.”
아저씨의 쌩쌩한 목소리가 골목을 휘감는다. 아버지가 아침에 놓고 간 천원을 들고 오빠와 함께 달린다.
“아저씨! 아저씨!”
한발 늦었는지 아저씨가 저 멀리 가 있다. 오빠와 내가 어찌나 큰 소리로 불렀는지 트럭이 멈췄다.
슬리퍼를 신어서 생각만큼 빨리 달리기가 어렵다. 숨을 헐떡거린다.
“아저씨 500원 어치 자리 줍서.”
“오늘은 자리가 별로 없고, 가격도 올라서 500원어치는 조금 밖에 안되는데. 어쩌지.”
“그럼 1000원 어치 줍서.”
오빠가 아저씨와 흥정을 벌인다. 500원어치 자리는 어린 마음에도 작아 보였다.
“아저씨 조금만 더 줍서. 우리 저기서 뛰어왔는데….”
우리 남매가 종알대니 아저씨가 귀여운지 알았다며 몇 마리를 덤으로 얹어 주었다. 아버지가 시킨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의기양양하게 긴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들어섰다.
아버지를 학수고대했다. 갈옷 입은 아버지 모습이 먼발치서 보인다.
“자리 샀니? 오늘 점심은 자리 다듬어서 초장 찍어서 먹자.”
아버지가 대충 몸을 씻고는 능숙한 솜씨로 자리를 손질한다. 내장을 빼내고 빽빽한 비늘도 살살 벗겨낸다. 투명한 듯 탱탱한 자리돔을 먹기 좋게 자른다. 집 뒤 우영밭에서 제피 잎과 부추를 따와서 흐르는 물에 씻고 잘게 썬다. 여기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 식초, 된장을 넣으면 아버지표 초장 완성이다. 널찍한 마루에 밥상을 펴고 둘러앉는다. 자리돔 뼈와 부드러운 살이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정말 맛있다. 오늘 자리 장수 놓치지 않고 잘 샀네.”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저녁에는 물회도 만들 계획이었지만 게 눈 감추듯 뚝딱 먹었다. 어머니의 자리를 채워 준 아버지가 차린 한 상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될 만큼 따뜻했다. 언제나 생각하고 계획하며 살아가기를 주문하셨던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평소 어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과자 한 봉지 값도 안 되는 천원이 만들어 낸 최고의 밥상이었다.
자리돔은 제주 사람들에게 사계절 사랑받았다. 젓갈과 구이, 회, 국 등 요리의 범위가 넓다.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는 자리돔 대가리를 간장에 졸인 다음 미역을 넣어 국을 끓여 주셨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은 지금도 군침 돌게 한다. 여러 가지 양념할 것도 없이 오롯이 밭에서 키운 콩으로 만든 간장과 물, 미역만 들어갔을 뿐이다. 자연의 맛이었다.
자리젓은 자리돔의 색다른 변신이다. 봄을 지나 여름 기운이 느껴질 무렵 6~7월에 싱싱한 자리에 천일염을 더하고 옹기 항아리에 담는다. 자리젓은 무더위를 견디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겨울 무렵부터 먹기 시작한다. 오래 삭힌 자리젓은 여름 콩잎에 쌈을 싸 먹을 때나 돼지고기구이와 곁들이면 육지와 바다의 환상의 조합이다. 어릴적 자리젓 항아리 주변을 지날 때는 곰삭은 냄새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밥상에 올라와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외면했지만 지금은 그 맛에 빠지게 된다. 손으로 쭉 찢어서 따뜻한 밥에 올려놓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자리돔은 여름 한철 태양과 사투를 벌일 만큼 힘들었을 제주의 농부들을 위한 식재료였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단백질을 보충해 주는 누구나 좋아하는 작지만 똑똑한 생선이었다. 여기에 밭에서 나는 오이와 양파, 고추 등 제철 식재료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자리물회는 더위를 순간에 날려줄 만큼 시원했다.
‘식구’라는 말이 정답다. 한집에서 살면서 밥을 같이 먹는 사람, 식구들 속에서 삶의 많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밥상 앞에서 식사 예절을 가르쳤던 아버지, 숨죽일 때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서로의 무게를 말없이 이해하고 받아주었다. 비가 쉼 없이 내리는 요즘 문득 자리돔이 생각나는 이유다. 음식으로 기억되는 우리 가족의 역사, 많은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삼시세끼의 번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힘들이지 않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넘쳐나지만 난 집밥 예찬론자다. 어설프고 때로는 맛을 얘기하기가 어려울 만큼 별로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가족을 생각하며 불 앞에서 시간을 보냈을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밥상에 오른 음식 모두가 진미다. 아버지의 자리돔처럼 나는 두 딸에게 어떤 음식으로 기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