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나를 만납니다

나를 지키는 몰입의 시간

by 오진미

여름방학이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간 날보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날이 더 많았다. 몇 개월을 삼시세끼 차려주며 함께 지내다 보니 방학이 특별하지 않다.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한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눅눅함이 생활 전체에 스며들었다. 아침을 준비하면서 또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고민하다 동네 별다방에 가기로 했다. 6월 어느날 동생이 기분 전환하라며 보내준 쿠폰을 이참에 사용하기로 했다.

“엄마 오늘 정말 카페 가는거야? 와아 신난다. 그럼 나 거기서 먹고 싶은 음료 시켜도 돼?”

“응 당연하지. 오늘 읽고 싶은 책이나 숙제 할 것들 챙겨서 가자.”

아이들 얼굴이 환해진다. 좁은 집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내는 터라 반가운 소식이었나 보다.

아이들 발걸음이 가볍다. 나는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맴 돈다.

“엄마 빨리와요. 왜 이렇게 늦어.”

문을 열고 카페로 들어선 시간은 오전 8시 반 정도, 정적이 흐를 만큼 조용했다. 한두 사람이 커피를 주문한다. 아이들은 아이스 초콜릿과 말차라떼를 시키고 난 오랜만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기로 했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초콜릿을 감싸 안은 케이크 한 조각도 함께다. 애들 핑계를 댔지만 오늘 이곳에 오기로 결심 한 건 다른 이유다. 오롯이 집중하고 싶었다. 집에서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을 흘려보낸다. 1시간을 쓴다면 20분은 다른 걸 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웬일인지 카페에 오면 서너 시간은 감쪽같이 사라질 만큼 집중하게 된다. 노트북을 꺼냈다. 아이들은 음료와 케이크 먹기에 바빴고 난 내 일에 신났다. 커피는 한 모금 마셨을 뿐이다. 손에 모터를 달아놓은 듯 바삐 움직인다. 사람들이 오가며 문 여닫는 소리, 통화음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지난 6월에는 십여 일을 카페로 출근했다. 주말에는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고 평일에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회사를 그만두고 10년 만에 시간을 다투는 일을 하게 됐다. 이토록 열심히 글을 쓰게 된 건 구청 수업에서 만났던 작가 선생님의 학교 기록물 작업을 해보겠냐는 제안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두려움에 망설였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큰딸의 격려에 뛰어들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자료를 받고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면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란 얘기와 실제 상황은 사뭇 달랐다. 뼈대를 그려가는 작업은 깜깜한 밤처럼 느껴졌다. 위기를 헤쳐나가야 했기에 한 달 동안의 계획표를 만들고 매일 써나갔다. 처음에는 내가 가능한 범위에서 손 가는 대로 일주일 동안 정리했다. 그렇게 서너 번 정도의 단계를 밟았다. 그러다 보니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면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이 과정의 팔 할은 카페에서 이뤄졌다. 누군가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모두가 여유로워 보이는 공간에서 난 그야말로 전사가 된 기분이었다.

“오늘은 3장까지 해야 돼, 내가 생각하는 대로 써보지 뭐. 가다 보면 길이 나올 거야.”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 공간의 주인처럼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지금 여기’의 마음으로 직면했던 시간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40여 일을 보내니 기록이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마무리만 지어보자는 마음으로 써나간 글이 정리되었다.

다방, 커피숍, 카페까지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그곳에는 항상 사람과 차라는 변치 않는 두 가지가 있다. 전화, SNS 등 직접 만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널려 있음에도 사람들은 시간을 내어 카페로 달려간다. 얼굴을 마주하며 오감으로 느끼는 특별함을 따라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페는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장소,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던 친구를 만나거나 집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분위기를 경험하며 대리 만족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혼자이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였다. 얘기하고 들어주기를 반복하다 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났다. 카페의 마력이다. 지금처럼 철저히 고립되어 나를 마주했던 적은 없었다. 내가 이토록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다. 세상의 모든 불안을 모두 껴안고 산다고 할 만큼 걱정이 많았던 내게 글 쓰는 순간은 나로 존재하게 했다. 기쁘다, 슬프다, 외롭다는 감정에 빠져들지 않고 머물 수 있었다.


카페와 사랑에 빠졌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카페를 즐겨 찾게 되는 이유를 거실의 확장성에서 찾았다. 비슷한 네모 상자,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 자신만의 공간, 거실을 갖추고 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쩌면 카페에 가는 행위는 집 밖으로 나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거실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연상시키는 곳에서, 넓은 한옥의 여유로움에서, 현대적이고 세련된 카페에서 잠시 머물며 행복을 느낀다. 카페에서 힐링했다고 얘기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카페는 내게 정해진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적절한 긴장감을 주면서 숨 쉬게 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 울 수 없기에 부지런하게 된다. 또 타인이기에 그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공존한다. 카페는 나만의 속도로 움직이며 몰입의 희열을 안겨준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조용하기보다는 왁자지껄함이 좋다. 전화하는 한 여성의 표정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음을 짐작하거나, 막 연애를 시작한 꿀이 흐르는 젊은 커플, 취업 준비생으로 보이는 청년까지 이들의 얼굴을 살짝 바라보는 것도 잠깐의 휴식이다.

“엄마 우리가 다 먹을 것 같아. 어서 드세요.”

“정말 맛있어, 엄마.”

끝이 보이는 케이크를 두고 첫째와 막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을 건넨다. 오늘따라 달콤한 그것보다 글 쓰는 순간이 좋다. 아이들도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한다. 그러다 보니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엄마 언제 갈 거야.”

막내가 이제 지겨워졌다. 초등학교 2학년 인내력의 한계다. 쓰던 글을 급히 마무리하고 컵을 정리했다.

2년 전 겨울, 마치 시장을 연상시키듯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서울 종로의 카페가 생각났다. 노신사 한 분이 노트북을 켜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몇몇 사람도 책을 읽고 있었다. 저들은 이리도 시끄러운데 어떻게 공부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멋스럽다. 때로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들을 나만의 편견으로 바라볼 때도 있었다. 내가 경험해 보니 카페가 주는 특별함이 분명했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노트북을 들고 동네 카페로 가고 싶어진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쓰며 마주할 때 잠시 평화를 느낀다. 언제나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그렇게 쓰다 보면 현실을 바라볼 용기가 생긴다. 우리 엄마 말처럼 ‘살다 보면 살아지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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