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마늘을 기다린다. 지난해 봄 수확한 마늘은 새해가 밝고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한 알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무언가를 매일 만드니 이것 또한 하루도 빠지는 일이 없다. 꽈리처럼 부풀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이들은 껍질이 벗겨지고 알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 구실을 한다.
마늘의 소중함을 경험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건 아마도 음식을 만드는 일이 결국 맛있게 먹기 위함을 절로 알게 되는 순간부터였다. 어떤 요리든 이것을 거부하기 어렵다. 밍밍하거나 맛을 헤칠 수 있는 냄새, 고소하고 달큰한 맛, 알싸함, 몸을 튼튼히 하고 싶을 땐 언제나 마늘이 등장한다.
내가 마늘을 가지고 무엇을 했던 건 엄마의 부엌이었다. 난 그곳에서 엄마의 손을 거치면 밥과 국이 만들어지고 나물과 몇 가지의 아주 소박한 재료만으로 특별한 밥상이 차려지는 걸 지켜보았다. 밭일과 주부로 언제나 일인 삼역 이상을 해냈던 엄마는 그리 넓지 않은 그곳에서 동분서주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야 하는 까닭에 손이 모자랐고 일찍 일어나는 나는 엄마의 동무이자 어설픈 조력자였다.
“마늘 이렇게 껍질 벗기는 거 알겠지. 엄마 저녁에 김치 해야 하니까 까놓고.”
“거기 도마에 마늘 올려놓은 거 있지. 칼 조심해서 끝으로 다져볼래.”
그리 즐겁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싫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엄마가 시켰기에 해야 했고 하다 보니 그런대로 할만했다.
“이 김치 맛 좀 봐라. 뭔가 부족한 거 같은데. 저기 마늘 있지 갖다 줄래.”
김치를 버무리는 날에는 엄마 옆에 붙어 앉아 지켜보았다. 그럼 언제나 엄마는 내게 맛보기를 권했다. “엄마 진짜 맛있다!” 언제나 한결같은 내 반응이었지만 엄마는 종종 무엇이 부족하다 느꼈다. 그럴 때마다 마늘을 찾았다. 신기하게도 마늘이 조금 더 들어가면 김치가 살아났다.
된장에 온갖 야채를 다져 넣은 쌈장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본 찬이었다. 계절마다 밭에서 나는 나물을 살짝 데치거나 날 것으로 쌈을 싸 먹었다. 된장 맛이 별로라고 툴툴대다가도 마늘을 넉넉히 넣고 섞어주면 이상하리만치 괜찮은 맛으로 탄생했다.
풋마늘이 시장에 나온 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추운 겨울 어느 틈에 모습을 드러냈다. 봄이 절정을 달할 무렵인 4월 중순부터 6월이면 마늘이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시간이다. 내 부엌에도 이것이 사라진 지 오래다. 내키지는 않지만 마트에서 깐 마늘을 사서 먹는 중이다.
마트 냉장고 한편을 점령한 이것을 마주칠 때 어떤 방법으로 저 많은 것들의 껍질을 벗겨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 사람의 손보다는 다른 무엇을 사용해서 단시간에 많이 까고 시장에 내놓아야 수지타산이 맞겠다는 생각이다. 집에서 내가 한알 한 알 손톱에 그 진한 향이 베이도록 하는 작업으로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지난주에 마트에서 마늘 한 봉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마늘도 이제 다 먹어 간다.
마늘에 이리도 마음에 가게 되는 건 먹는 일이 건강과 연결돼 있다는 것, 곧 잘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너도 나이가 들어봐, 지금처럼 쌩쌩할 것 같지 아니야. 아마 더 몸이 힘들어질 거야.”
옆집 언니는 십여 년 전부터 나만 보면 몸을 챙겨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집안일은 물론 마음 쓸 일이 많아지는 까닭에 힘들어서 기력이 떨어진 나를 볼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음식 만드는 게 취미이자 일인 나에게 그래서 마늘은 친구 같은 존재다. 이것이 없다면 내 음식은 앙꼬 없는 찐빵같이 허전할 듯하다.
누구든 마늘이 몸에 좋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단지 시간을 내어 까는 게 번거롭다 여겨질 수 있다. 플라스틱 통에 빻아져 포장된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그리 염려할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 역시 워킹맘이던 시절에는 그 일이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60을 넘기면서 병원 진료를 위해 서울에 올라오던 아버지는 마침 엄마와 동행했다.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었기에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물렀다. 퇴근하고 보니 그 많던 마늘이 껍질이 다 벗겨져 깨끗한 상태로 소쿠리에 물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했니? 네 아빠랑 그 마늘 다 까놓았으니 주말에라도 빻아서 냉동했다가 먹고 얼마는 뚜껑이 잘 맞는 통에 넣어서 냉장 보관해라! 그러면 얼마 동안은 싱싱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 알았지.”
고향으로 내려간 엄마의 전화였다. 큰 그릇에 가득 담긴 뽀얀 얼굴을 드러낸 마늘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무엇이라도 도와주려는 부모님의 따뜻함에 눈물이 맺혔다.
산책길 텃밭에 마늘잎이 올라와 제법 쌩쌩해졌다. 물 위에서 한가로워 보이는 오리가 살아가기 위해 발길질을 해대듯 세상에 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커가고 있을 그들이 궁금하다. 눈 오는 한겨울과 바람 부는 그날에도, 어김없이 땅을 벗 삼아 커 간 그들이 이 봄을 두드리고 있다.
코를 자극하는 햇마늘의 향기가 그립다. 통째로 구워서 달콤함과 부드러움만 남은 그것을 먹고 싶다. 마늘의 싱싱함과 버터가 만나 매력적인 고소하고 진한 마늘 바게트를 만들어야겠다. 그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