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가 어렵지만
책을 읽어야겠다

by 오진미


문자가 왔다. 동네 도서관이다. 이틀 뒤면 빌려 간 책을 반납해야 한다는 알림이다. 기분이 별로다. 다섯 권의 책을 빌렸는데 두 권은 읽었고 나머지는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2주 전 비바람을 뚫고 가져왔는데 생각처럼 읽지 못했다. 그보다는 몸에 익어버린 독서 습관 탓인 것 같아 불편하다.


읽고 싶다는 강렬함이 이끈 행동이었다. 토요일 오후 도서관을 부지런히 가야 할 이유가 없었는데 마음이 자꾸 가야 한다고 나를 재촉했다. 책 제목을 염두에 두고 간 것도 아니었기에 마음이 내키는 대로 고른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설렘과 기대를 품은 시간이었다. 책에서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나를 집중하게 하고 재미있는 독서로 안내할 거라고 믿었다. 오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디자인에 대한 에세이였는데 사진과 짧은 글이 함께 하기에 쉽게 읽혔다.


한 시간 남짓 그렇게 책을 읽으니 다른 일을 준비해야 한다. 저녁 시간이었다. 잠시 책을 식탁에 두고 앞치마를 둘렀다. 그러다 다음날은 책과 마주한 게 삼십 분 그다음 날은 더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책들로부터 도망치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책에 대한 부담이 쌓여갔다. 독서에 대한 열망과는 반대로 내 생활은 과거로 돌아갔다.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얼마의 시간을 버텨야 하는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잠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난 다시 딴짓하기 일쑤다. 책만큼 나를 세상의 것들과 연결해줄 다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집중하지 못하는 건 습관이었다.


책 읽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책과는 거리를 두고 산다고 할 수 없지만, 책 속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작가의 얘기가 궁금하지만, 발을 담그지 않고 알고 싶은 욕심과 게으름이 나와 한 몸을 이루는 듯하다. 몇 해 전 사놓은 <그리스인 조르바>는 끝을 달려가고 있지만 끝내지는 못한 숙제 같다. 그 책등을 볼 때마다 괜스레 모른 척하고 싶다. 피하고 싶은 내 일상을 보는 듯하다. 내가 넘어야 할 산 같다. 망설임 저편에는 완독 했을 때 느껴질 기쁨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난 그리 체계적이지 못하다. 마음이 불꽃처럼 일어났다가도 사그라진다. 오랫동안 진득하게 견뎌내지 못하는 몸에 밴 습성은 독서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독서는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가 싶다. 재밌게 술술 읽히는 책이라면 문제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끈질긴 집요함에 있어야 생활 안에 머무르지 않을까.


내 앞에 책이 놓여 있다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이상 그것에 집중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한두 장을 읽고는 집을 어슬렁거리거나 화분에 물을 주거나 검색을 하는 일로 정신을 나누어서는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의 흐름을 이어가면서 읽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서 책과 멀리한다고 한다. 일정 부분은 맞고 어느 한 편으로는 틀리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안고 사는 사람에게는 분명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읽기 위해 부단히 마음과 몸을 써야 할 일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부터는 누구나 내뱉는 그 말을 도로 삼키게 되었다.


책과 가까워지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생각해 보니 떠오르지 않는다. 글자를 읽어가며 앞뒤의 생각을 고려하고 모르는 단어까지 찾아보려는 의지가 없음이었다. 때로는 어떤 책은 어려워서 하품이 나왔고 그러다 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도 한몫했다.


요즘은 오디오북까지 등장했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없애주는 또 다른 독서법으로 사랑받는다. 눈으로 보는 일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게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조금의 위안을 얻는다. 어릴 적부터 오빠가 내게 하던 말이 있다.

“넌 너무 책을 겉핥기로 읽어서 문제야. 빨리 읽기보다는 천천히 정독해야 이해할 수 있고 오래 남는 법인데 말이야.”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깊이 읽기가 어렵다. 마음을 두고 한 적이 별로 없다.


비 오는 토요일 우산을 들고 책을 반납하러 갔다. 무인 대출함에 책을 올려놓고는 반납 버튼을 누르기가 아쉬웠다. 그 책들이 다시 내게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동시에 미안해졌다. 얼굴은 모르는 작가이지만 책 안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다시 이별이라니. 다시 대출 연장을 할 수도 있지만 그냥 서고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러는 편이 낫다. 혹여나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집 어딘가에 두다 도서관으로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독서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읽지 않으면 생각하는 일이 어렵다. 사물을 바라보고 내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살피는 일에는 꾸준한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게 책 읽기다. 가끔 눈이 번쩍이는 책을 만나면 절로 들뜬다. 미지의 세상을 여행하기 위해 날짜를 잡은 사람처럼 말이다.


따스한 봄날에 딱 한 명의 친구를 사귀고 싶다. 그건 책이란 녀석들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것이 내 삶을 바라보게 하는 거울 같은 것이 되었으면 한다. 도서관에 가는 일도 두려워 말아야겠다. 절반의 성공을 하다 보면 언젠가 빌린 책을 다 읽는 날이 올 테니. 다양한 표현들을 꺼내어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살아있는 글들로 정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꼭 붙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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