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로 출근하는
그녀를 오해했습니다

by 오진미


동네 카페는 엄마들의 숨터다. 아이들과 남편이 떠나고 나면 이때부터 그들의 시간이다. 집안일을 대충 끝내고 여유가 생기는 11시를 훌쩍 넘긴 그때부터 초중학생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3시쯤까지 자유가 찾아온다.


막내가 아기였던 십 년 전만 해도 카페는 먼발치서 스쳐 지나가는 그런 곳이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지만, 마음의 거리는 멀었다. 지금은 그 모든 게 가까워졌다.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내 활동반경은 넓어졌다. 흐른 시간만큼이나 카페가 하나둘 늘었다. 집에서 몇 발자국 가면 두 곳, 10분 거리에는 그 수를 헤아려 보지 않았지만 족히 십여 개는 넘는다.

새로운 곳이 문을 열 때마다 아줌마들은 설렌다. 장막을 치고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면 궁금증이 절정에 달한다. 취향의 문제지만 트렌드를 적당히 버무리거나 아니면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이면 어느 정도 합격이다. 여기에 음료와 디저트까지 괜찮다면 한 번쯤 가고 싶은 장소가 된다. 아줌마들의 입소문은 봄바람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어느 날 그곳을 찾았다면 앞뒤를 둘러보자.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몇 번 익혔을 이웃들이다.


이곳에선 수다와 대화의 공식이 존재한다. 떠오르는 대로 많은 얘기를 꺼내놓는 것, 수다. 대화는 어떨까? 얼굴을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감정이 앞서기보다는 이성과 절제가 앞서는 느낌이다. 난 전자보다 후자에 더 가치를 매기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카페로 달려가 출근부에 도장 찍듯 하는 이웃의 친구를 보면서 그런 마음은 더 강해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편견이었고, 내가 하지 못하는 그것에 대해 부러움과 질투였다. 그는 월화수목금 내내 동네 카페를 종횡무진 누볐다.


“우리 언제 차 마셔야 하는데, 언제 날 잡자.”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면 빼놓지 않고 이 말을 건넸다. 처음엔 정말 언제 만나지 하는 마음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날 때마다 듣게 되니 그야말로 빈말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다른 이들과는 카페에서 수다 한마당을 벌이면서 시간이 없다는 건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카페로의 외출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금발로 염색한 웨이브 출렁이는 머리에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계절에 맞는 형형색색의 옷을 소화해 내는 그는 우리 동네 멋쟁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심을 둘 일도 이상하게 바라볼 것도 아니었다.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엄마가 항상 아이 책가방을 받아주고 집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고 규정짓는 건 정말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다. 나와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편했다.


그를 바로 보지 못한 건 누구를 만나 일상을 풀어놓고 싶은 채워지지 않는 내 욕망 때문이었다. 타인과 만남은 즐겁거나 속이 후련해지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어느 것 하나에 끌리는 게 있어야 할 일이다. 그가 내게 만남을 얘기하면서도 선뜻 약속을 잡지 않은 것도 이런 지점이 없던 게 아니었을까?


그는 내가 아는 이들 중 손꼽을 만큼 건강하게 산다. 속속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몇 년을 지켜보니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끙끙대며 고민하지 않는다. 설령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하루 정도가 동굴에 들어가는 시간일 뿐이다. 금세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왜 나와는 그렇지 않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모습 그대로 보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고정관념처럼 여겨졌던 여러 가지에 대해 조금씩 너그럽게 되었다. 일상을 보내는 다른 방식을 시험지 풀 듯 정답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 카페는 꿈의 구장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긴장과 삶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 갈 것이다.


난 간헐적으로 두세 명의 친구를 만난다. 수다와 대화의 중간 어디쯤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약속이 정해진 날에는 구름처럼 수없이 많은 얘기가 떠다니지만 막상 그날이 오면 차분해진다. 만남은 버스가 정류장에 일정 간격으로 서듯, 아이들과의 일상에서 시작해 나를 얘기하는 것으로 맺는다.


카페에서 난 항상 디저트와 함께한다. 친구가 관심이 없더라도 케이크 한 조각, 스콘 하나를 고른다. 그래야만 말의 즐거움이 찾아온다. 맛있는 수다를 위한 나만의 법칙이다. 집을 벗어났기에 나라는 존재를 오롯이 마주한다. 작은 일상의 탈출이면서 그곳의 분위기에 머무르게 되는 휴식이다. 초록 초록 식물과 앉기 편한 나무 의자가 있는 곳, 예쁜 컵 하나에도 주인의 취향이 느껴지는 곳이라면 침묵조차 기꺼이 편안하다.


수다와 대화를 구분 지으려 했던 건 관계 맺음에 대한 갈망과 그렇지 못한 현실을 위로하려는 행동이었다. 카페로 달려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는 이해할 수 없다거나 시간을 죽이는 일이라 평가절하했다. 1년, 2년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잘 살아가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주부들에게 수다는 남편과 아이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걸 발견하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한 연구에서도 오래 사는 비법 중 최고가 운동보다 수다라고 한다.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난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카페를 다녀오는지 활기가 넘친다. 살짝 스쳤을 뿐인데 덩달아 좋은 기운을 얻었다. 그의 카페 여행을 응원한다. 나도 며칠이면 새 단장 공사를 마칠 우리 집 옆 그곳이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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