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아저씨의 인사는
왜 불편한 걸까?

by 오진미


“안녕하세요.”

토요일 아침 남편과 운동에 나서는 중이었다. 아파트 놀이터를 지나려는데 주변을 정리하던 경비 아저씨가 인사를 건넨다. 겨울 찬 기운이 느껴질 만큼 싸늘한 날씨였다. 빗자루를 들고 이곳저곳을 쓸던 아저씨는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가 바로 옆을 스쳐 지날 즈음 힘 있는 목소리로 전했다. 그 순간 듣고 뜨끔했다.


모르는 동네 사람이 지나가나 보다 하고 그냥 지나쳐도 될 일이었다. 아저씨의 한마디는 내게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모른 척하지 않으니 고맙기도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내 생각은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왜 아저씨가 우리에게 인사한 건지?’ ‘ 꽤나 열심히 일 하시는 분 같은데.’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보 왜 아저씨가 우리에게 인사한 거지?”

“뭐 그냥 동네 사람이니까 그런 거겠지.”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다. 그럼에도 난 계속해서 아저씨를 떠올리게 됐다. 인사를 주고받는 일은 익숙한 풍경 아닌가. 누군가 내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다면 잠깐의 즐거움이자 고마운 일인 것을 왜 이리 깊이 그 까닭을 궁금해하는지 나를 알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럴 땐 집요하리만큼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방법이다. 외면하거나 피하고 싶은 것들을 끄집어내는 수밖에 없다. 내가 바라보는 건 순수한 인사 이전에 다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요즘 들어 아파트 경비원과 입주민 간의 갈등이 심심찮게 사회 문제로 부각된다. 사람 사이에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어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일방적인 폭행과 폭언이 횡횡한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이웃들에게 따뜻한 미소로 열심히 일했던 경비원 분들이 그 자리를 떠나게 되거나 큰 상처를 입어 돌이키지 못할 지경에 이를 정도다. 그런 사회적인 상황과 내 물음이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듯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아저씨의 행동은 주민들의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으로 비쳤나 보다. 그 또한 훌륭한 일인데 편하게 여기지 못했다. 재활용 정리장에서 가끔 만났던 그분 같다. 그때도 볼 때마다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잊지 않았다.


아저씨의 모습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일을 위한 나름의 적극적인 표현이었든,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건네는 몸에 밴 습관이든 인사는 관계를 이어주는 작은 끈이자 호감의 표현이다. 그것에 색안경을 낀 나를 돌아볼 일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누구든 동네 어른을 만나면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인사를 건네라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찡그린 얼굴보다는 살짝 웃는 얼굴로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금상첨화라 했다. 먼발치서 동네 어른이 보이면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담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인사를 하면 칭찬이 돌아왔다.

"그래 착하구나. 인사도 잘하고."

괜스레 어깨가 올라갔다. 내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는 건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모습에 다른 색깔을 입혀서 확대 해석을 하려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아저씨가 고마웠다. 해야 할 일도 많을 텐데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마음을 건네는 모습은 배워야 할 일이었다. 오늘도 엘리베이터에서 위층에 사는 주민을 만났다. 얼굴만 몇 번 익힌 이웃이다. 순간 인사를 해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인사는 타이밍인데 그냥 지나쳤다.


같은 공간을 이용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인사를 건넬 이유는 충분하다. 모른 척 지나쳐도 누가 뭐라 하지 않겠지만 ‘안녕하세요’ 하는 한마디는 좁고 차가운 공간에 온기를 돌게 한다. 어색함은 줄어들고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 편안하다. 인사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행동이었다.


봄이 인사하는 요즘이다. 말하지 않아도 봄은 예쁜 꽃과 새싹으로 우리에게 말 걸고 있음을 직감한다. 아저씨의 그날 아침처럼 이제는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해야겠다. 인사는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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