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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04. 2021

오이라면


라면이 먹고 싶다. 며칠 전부터 문득문득 떠오르더니 꼭 오늘은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아침부터 간절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라면은 아니야’라고 강한 거부가 일어난다. 항상 기대와 달리 후회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날은 흐렸고 시계는 점심때를 달려간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다 신라면 하나를 꺼냈다. 오랜만이다. 냄비에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면과 수프를 넣어 최상의 맛을 낸다는 4분을 기다렸다.     


후루룩 거리며 먹는 면과 김치와의 만남은 절묘하다. 이것만큼 익숙해졌지만 매일 다른 느낌으로 설레는 게 또 있을까 싶다. 때로는 이 둘의 하모니가 극적이다. 이쯤이면 라면 신봉자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난 정반대다.      


라면을 먹기 전후의 만족감이 극과 극이다. 먹기 전에는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지만 먹고 나서는 속이 더부룩 해지면서 부담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기분은 무게가 너무 차이나는 어른과 아이가 시소에 올라타서 한쪽은 땅에 또 다른 이는 하늘 위에 매달려 있는 것과 흡사하다. 이러니 먹고 싶지만, 선뜻 손이 가기 힘든 게 라면과 나의 관계다.    

 

이날은 라면밖에 생각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때 오이가 생각났다. 라면 수프에 첨가된 조미료와 짠맛이 거슬렸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최선인 듯했다. 오이 반개를 채 썰어 라면 위에 얹었다.     

오이라면이 탄생했다. 매운맛이 강렬했기에 제법 잘 어울렸다. 오이의 아삭함과 시원함이 라면의 뜨거움을 식혀주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도록 했다. 향긋한 초록의 향은 라면을 고급스러운 맛으로 변화시켰다.  


너무나 강렬했던 라면에 대한 욕구를 채워 주었다. 먹고 나서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전에 느꼈던 속 쓰림 같은 건 없다. 오이가 자극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나 보다. 라면 한 그릇에 유난이다 싶으면서도 내게 맞는 레시피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썩 괜찮았다.     


라면에는 힐링을 전하는 마법이 숨어 있다. 누구나 쉽게 끓여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 또한 저렴하다. 라면에 더해지는 것이 많아질수록 값이 올라가지만 한 그릇을 당당히 선보이는 메뉴 중 이만한 가성비가 있는 것을 찾기 힘들다. 라면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거부당하는 일이 별로 없는 식탁 위 강자다.   

   

우울해서 가슴을 뻥 뚫리는 먹거리가 그리울 때, 배는 고픈지만 특별한 게 생각나지 않을 때 라면을 꺼낸다. 때로는 그립고 만만하지만, 만족도는 절대 가볍지 않다. 내가 라면을 먹고는 다음에는 먹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도 다시 떠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라면은 내 마음을 알려주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혼자 라면을 먹는 날은 우울함이 살짝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다. 티비를 켜놓고 라면에 집중하고는 한두 시간 널브러져 있고 싶은 마음이다.      

때로는 심심하다는 생각에 빠져들 때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지만 외면하고 싶고 누구의 전화나 카톡이 기다려지는 즈음이다. 수프의 진한 맛과 입천장을 델 정도의 뜨거운 라면 한 젓가락을 들어 거침없이 입으로 직행하는 순간 짜릿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외로움이 사라진다. 라면을 먹는 넉넉잡아 20여 분의 잠깐이지만 말이다.     


어릴 적 라면은 내게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시고 싶을 정도의 갈증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오빠는 내게 항상 라면 심부름을 시켰다.

“가서 라면 두 개만 사와. 알았지?”

“가기 싫은데.”

“너 그럼 라면 조금만 달라고 하면 안 돼. 정말 그럼 너 죽을 줄 알아!”

다섯 살 차이 나는 오빠의 말은 거의 협박에 가까웠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오빠는 중학생이었다. 오빠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학교가 끝나고 오면 라면을 먹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내게 심부름을 시켰고, 항상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겼다. 오빠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기에 겁을 먹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왔지만 못마땅했다. 내가 사 왔으니 조금 나눠주었지만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혼자 라면 한 개를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라면은 건강을 이유로 살펴 먹는 조심스러운 것이 되었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많이 알게 된 건 당연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나트륨 함량보다 내 욕심에 어찌 못해 갈등하는 것들이 더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은 언제나 쉽게 잊힌다. 오이라면을 생각해 냈으니 적당히 절충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다시 라면을 먹는 날 내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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