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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07. 2021

친구를 위해 밥을 차립니다

 

밥 같이 먹는 친구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함께한다. 그러기를 벌써 5년 정도 되어 간다. 서로에게 일이 있으면 건너뛰기도 했고 코로나가 심했던 지난해는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가 아침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거실 정리를 하고 있던 난 잠깐 숨을 고루 쉬었다. 집 정리가 문제였지만 오랫동안 봐 온 이였기에 괜찮다 생각했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어서 집에서 보자고 답을 보냈다.     


밖에서 보다가 집에서 만나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가끔은 다른 장소를 물색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우리 집이다. 내가 점심을 준비하고 함께 먹으며 밀렸던 얘기를 나눈다. 한두 해 보내고 나니 한 달을 건너뛰면 허전할 정도다.  

   

이날은 자화자찬으로 요리에 자신 있다는 내가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음식을 준비한다. 스파게티와 샐러드 몇 가지를 만들기로 했다. 토마토와 상추, 파프리카, 마늘, 양파, 당근 등 집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흐르는 물에 씻고 도마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친구가 왔나 보다. 

“잘 지냈어요?”

“진미 씨도 잘 지냈어요?”

얼굴을 본 지 두 달이 훌쩍 흘렀다. 담백한 안부 인사는 우리의 관계를 닮았다. 서로가 있는 그대로다.   

친구는 식탁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난 그때부터 음식 만들기에 돌입한다. 토마토는 대충 굵게, 마늘은 편으로, 파프리카는 먹기 좋은 크기로 생각나는 대로 썰었다. 여기에 상추를 접시에 손으로 엉성하게 뜯어 놓았고 파프리카를 올렸다. 당근 샐러드도 준비했다. 얇게 저민 다음 채 썰어서 소금을 뿌려두었다. 단호박도 준비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여러 얘기가 오간다. 바쁠 것 없으니 서두르는 일도 없다. 천천히 내 속도로 가면 된다. 마음은 비 온 뒤 하늘처럼 맑다. 크게 정성을 기울여 잘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적인 부담이란 걸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만들면 된다.   

  

스파게티 면을 9분 정도 삶았다. 그다음에는 올리브유에 저민 마늘을 볶다가 새우와 토마토를 넣었다. 조금 익어갈 무렵이면 소스를 붓고 적당량 우유와 면수를 넣고 잘 저었다. 갑자기 새송이버섯이 떠올라서 이것도 더했다. 보글보글 끓을 무렵 면을 넣고 3분 동안 소스가 스며들게 했다.    

  

준비한 그릇에 재료를 담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파프리카와 상추에는 올리브유와 발사믹, 매실액을 넣은 소스를 뿌렸다. 내가 사랑하는 단호박에는 아몬드를 절구로 적당히 빻아준 다음 플레인 요구르트에 꿀을 조금 넣어서 달콤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당근 샐러드에는 올리브유만 뿌렸다.    

  

제법 여러 가지가 만들어졌다. 친구가 맛있다고 하며 즐겁게 식사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새롭게 느껴질 만큼 조화롭고 살아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샐러드 소스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초록과 빨강 주황색이 식탁에 오르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환해진다.    

  

유쾌한 식사였다. 시원한 바람이 집 안을 오갔고 햇살은 환하게 주변을 비추는 초여름 날이었다. 날씨만큼이나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이런 기분이 음식에 그대로 담겼다.     


삼시세끼를 만드는 전업주부의 부엌에는 항상 적당한 피로감이 쌓여 있다. 매일의 밥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차려내는 게 결코 간단치 않다. 식구들의 기분과 좋아하는 것들을 나름 고려하고 적당히 어울리는 식탁을 꾸미는 일은 어렵다.     


생각은 이러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날이 많다. 그럼에도 밥상 차리는 일은 엄마들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되면 찾아오는 숙제다. 친구와의 식탁에서는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없다. 내가 대접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내고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내 음식에 언제나 박수를 보내는 친구다. 몇 해 전에는 ‘미 테이블’이란 이름으로 음식 레시피를 알려주는 쿠킹 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두세 번 하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 추억이다.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함께 얘기하며 살아가는 관계를 꿈꿔왔다. 전업주부가 되면서 그렸던 내 이상이기도 했지만 그리 쉽지는 않았다. 내게는 음식이라는 게 간단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어려운 것이었다. 타인에게 집을 공개하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와 점심은 끝이 났다. 이제부터는 대화의 시간이다. 언제나 심심할 겨를이 없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만큼 쌓였던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다. 엄마라는 자리는 언제나 아이가 우선인가 보다. 생활에서 겪는 아이와의 갈등이 맨 먼저다. 그다음은 서로의 일상이다.  

   

우린 언제나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얘기한다. 우울했던 감정들, 하루를 보내는 과정에서 떠올라서 힘들게 했던 것,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나눈다. 모호하고 답이 없지만 끊기지 않는 것들이다. 몇 년을 이것들에 대해서 서로의 얘기를 들었다.      


“나 지난주에 비교병에 걸렸었어. 의욕도 사리지고 얼마 동안 그렇게 보내다 어제부터 좀 살아나는 것 같아.”

그가 내 말을 듣고 살짝 웃는다. 무엇인지 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신호다. 그가 특별히 반응하지 않아도 말하고 나니 편해졌다. ‘괜찮아, 좋아질 거야.’라며 공감해 주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다. 그도 나도 이상하리만치 서로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간다.      


우리는 주변에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듯하다. 밥을 함께 먹은 시간만큼이나 단단해진 걸까. 친구는 올 때마다 항상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 들고 온다. 아이들에게는 친구가 다녀갔음을 알려주는 상징이 되었다.

“아 엄마 친구 왔다 갔구나. 그 빵집 빵이다.”

꾸준하다는 건 기억되고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면서 익숙해지고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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