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초록 정원 이야기- 유칼립투스
숨이 턱턱 막혀오는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한낮에는 어디선가 장작불을 떼는 것처럼 뜨겁다. 에어컨의 본격적인 활동무대다. 리모컨을 누르기만 하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순간 집안 공기도 달라진다. 아이들 얼굴이 살아난다. 지난여름 마음 아팠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애지중지 키우는 유칼립투스 한그루가 있었다. 2년 전 겨울, 꽃 시장에서 유칼립투스 한 다발을 사서 안방 벽에 걸어두었다. 오가며 나는 은은한 향에 이끌렸다. 직접 키워 보기로 했다. 내 손으로 두 뼘 정도였던 아이였다. 봄기운이 막 올라오던 2월경에 데려왔다.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쏙 들었던 터라 애지중지했다. 손가락으로 흙이 어느 정도 말랐는지 살피며 물을 주었고 적당한 볕이 드는 공간에서 키웠다.
그렇게 일 년 반을 보내니 족히 1미터는 될 만큼 컸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가녀렸다. 유칼립투스 옆을 지날 때 가지가 부러질까 걱정되어 식구들에게도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엄마 나보다 이 유칼립투스가 더 좋아? 정말 그렇지.”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툴툴댔다.
베란다에서도 잘 커가는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여러 식물 중 내 사랑을 독차지했다. 지난여름 어쩐 일인지 잎이 늘어지고 생기가 없어졌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서 베란다에서 거실로 옮겼다. 가끔 흙이 말랐는지를 살피곤 했는데 그때마다 적당히 축축한 상태라 그냥 지나쳤다. 며칠 그렇게 지내다 이상한 느낌에 밝은 곳으로 화분을 꺼내 보았다. 잎이 바짝 말라가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볼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다시 물을 주고 며칠을 마음 졸이며 들여다봤지만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1년 반 만에 그렇게 떠났다.
그동안 식물을 꽤 키웠지만 그렇게 마음이 아팠던 적이 없었다. 이별이란 단어가 가슴에 콕 박혔다. 세심히 살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화분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몇 주를 그대로 두었다. 신기하게도 나를 감싸주었던 향은 여전히 남아 위로해 주었다. 가지를 잘라 병에 꽂아두기로 했다. 볼 때마다 처음 만나 함께했던 때가 그려졌다. 한편으로는 애잔했다. 유칼립투스의 생리를 잘 몰랐던 내 무지를 탓하면서 말이다.
이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나와 유칼립투스와의 관계가 그러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교차하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런 마음을 담아 다시 유칼립투스를 키우기로 했다. 지난봄 데려온 새 친구는 짙은 녹색 빛에 잎이 넓었다. 다른 종의 유칼립투스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유칼립투스는 700 여종이 넘는다고 하니 당연하다.
식물과 잘 어울리는 적당한 크기의 토분에 심었다. 튼튼히 뿌리내리도록 물도 흠뻑 주었다. 좋은 친구가 되어보자고 인사도 건넸다. 몇 달이 지났지만 크는 것도 더디고 예전만큼 마음 주기가 어렵다. 먼저 내 맘을 읽어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대상이 누구든 헤어진다는 일은 어렵다. 누군가는 식물일 뿐인데 뭐 그리 마음을 쓰냐며 공감하기 어려워한다. 마음을 잡지 못해 힘들 때 유칼립투스 잎 하나가 새로 돋아나고, 가지가 자라는 순간이 행복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뼘씩 자라나 미소짓게 했다.
언제나 이별은 먼 얘기, 타인의 일로 여기며 산다. 영원할 것처럼 지내다 슬픔을 마주할 때는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터벅터벅 하루를 보낼 뿐이다.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도 그러했다.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 무렵, 기력이 점점 없어지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헤어짐을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나 내 얘기를 들어줄 거라 여겼다. 최근에 아버지가 입원했던 서울 병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잠실나루역에 내려 카드를 대고 출구로 나가는 순간 멈칫했다. 잠깐이라도 아버지를 보기 위해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달려갔던 내 모습이 그려지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투병 중임을 알면서도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순간이 좋았다. 빙그레 웃어주던 미소도 눈에 선하다.
마음속 추억의 창고 안에 간직해 둔 시간을 꺼내놓고 살핀다. 삶에 지쳐가던 내게 한줄기 소나기 같이 다가와 청회색 잎이 빛나던 유칼립투스다. 지금 내 곁에 없지만 멋진 일을 해내고 떠났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세상의 존재하는 수많은 식물 중에서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왔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현재에 발을 딛고 살라고 한다.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도 존재하는 법, 나를 성장시켜 준 추억들 사이로 유칼립투스와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또 다른 유칼립투스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