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도가 있는 정글,
솔직한 공간을 꿈구며

우리집 초록정원 이야기

by 오진미

잎에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맑고 투명하게 앙증맞게 작은 그것이 아침 기분을 맑게 한다. 살짝 보니 옆에 새잎이 돋아난다. 크루아상처럼 돌돌 말린 작은 잎이 기지개를 켜려고 준비한다. 며칠이 지나면 세상에 인사를 건넬듯하다. 살짝 바라보면 밭 모퉁이에 있던 토란과 닮았다. 우리집에서 지낸 지 6개월째인 몬스테라다.


몬스테라를 알게 된 건 집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집은 또 다른 내 모습이다. 잠을 자고 쉬며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솔직한 공간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취향과 일상을 여과 없이 담고 있기에 우리의 색의 입혀진 소박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집이 궁금해져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몇 권 빌렸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집안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살피고 있는데 눈이 가는 식물이 있다. 어느 집 거실 한편에서 형사 가제트가 긴 팔을 자유롭게 뻗은 모습으로 마치 정글의 신비로움을 연상시켰다. 어질러진 것 같으면서도 큰 식물을 중심으로 집안이 살아나고 있었다. 몬스테라가 마음껏 자라고 있는 집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몬스테라를 키워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로컬푸드 매장에서 장 보고 돌아오던 이른 봄이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토분이 겹겹이 쌓여 있는 화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이름 모를 꽤 키가 큰 식물들도 함께였다. 어느새 초록불로 바뀌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몬스테라를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네 꽃집으로 가서 적당한 것으로 골랐다. 나를 위한 소중한 선물이었다.


‘봄의 파도’라는 의미로 ‘봄도’라고 부르기로 했다. 잎이 크고 가운데 찢기거나 구멍이 뚫인 것이 파도치는 느낌이다. 며칠을 오가며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봄도가 살짝 부담스러울 만큼 그렇게 했다. 코로나로 어디를 오가는 일마저 부담스러운 일상이다. 커다란 초록 잎, 긴 줄기를 바라보는 순간 잡념들이 없어지고 상쾌해지는 느낌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리던 야생미가 느껴질 만큼 자랄지 궁금했다.


식물은 내게 몰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멈춤과 여유를 만들고 잔잔한 나만의 행복을 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물을 주거나 마른 잎을 정리하고 분갈이를 하고 주변 먼지를 쓸다 보면 마음이 그리 편안할 수가 없다. 봄도가 우리집에 오던 날은 오래 기다리던 친구를 초대하는 기분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고 위로받는 느낌이다.


삼나무와 귤나무, 동백나무, 담벼락을 휘감는 넝쿨 식물까지 초록들로 휩싸인 중산간 마을에서 자랐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숲이 펼쳐졌다. 그럼에도 초등생 시절부터 집안에서 식물들을 키우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꽃샘추위가 기세를 떨치던 어느날 과수원 가는 길에 베어져 뒹구는 마삭줄이 얼기설기 감긴 통통한 나무를 발견했다. 집으로 가져와 대접에 물을 담아 화병에 꽃을 꽂듯 나무를 담가 놓았다. 안방 5단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는 초록 줄기를 보며 혼자 흐뭇했다. 둥근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먹을 때에도 몇 번이고 올려보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30여 년 전 왜 그리 식물에게 끌렸는지 모르겠다. 그냥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되서는 습관처럼 식물들과 친했다. 회사 책상에는 물꽂이 한 개운죽이나 오래 잘 사는 식물들을 계절별로 사다 놓았다. 아침 온갖 복잡한 마음을 안고 회사에 출근할 때, 사표를 쓰고 뛰쳐 나가고 싶었던 순간에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친구, 초록이 내게 주는 마법이었다.


식물을 키우는 일도 사람과 관계 맺는 일과 닮았다. 바라만 봐도 좋은 설렘의 시간이 사라지면 적당히 외면하다 어느날 새잎이 자란 걸 보면 다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다 또 정신없이 지내다 문득 살펴보면 여전히 튼튼히 자라고 있거나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순간이다. 물 흐르듯 잘 지나가다 어려움을 마주하고 다시 또 흘러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내 일상과 닮았다.

몬스테라 1.jpg

봄도가 우리집 거실을 야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만들어 줄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커갈지 기대하며 나만의 그림을 그려 본다. 아이들이 덥다고 아우성이다. 에어컨을 틀어 놓고 쉬고 있는데 휴대폰에서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는 재난문자다. 꼭꼭 닫힌 공간에서 찬바람을 맞을 봄도에게 이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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