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초록정원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 알로에 밭으로 향한다. 식전 주스에 넣을 알로에 잎을 따기 위해서다. 알로에 고향은 친정집 창고를 감싸는 담벼락 아래 작은 공간이다. 처음에는 두 그루로 시작했다.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신문지에 고이 싸서 가져왔다.
벌써 8년이 지났다. 계절이 바뀌고 무럭무럭 자라더니 옆으로 싹이 돋아났다. 그렇게 몇 해를 보냈다. 이제는 식구가 늘어 새집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스티로폼 택배 상자며 낡은 냄비까지 총동원되어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알로에 미니 농장이란 말도 어색하지 않다. 사계절 초록과 연두의 중간쯤인 부드러운 빛깔을 자랑한다. 오래 두고 지내온 만큼 뾰족한 잎의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가시도 괜찮을 만큼 친근하다.
오랜 시간 함께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예민하지 않고 무던히 잘 자라기 때문이다. 한 달에 두세 번 물주는 일만 게을리하지 않으면 된다. 초원에서 방목하는 유목민의 양떼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다. 요즘처럼 햇살이 강한 여름에도 며칠 집을 비워도 끄떡없이 잘 버텨주는 고마운 식물이다.
장마 기운이 아직도 남았는지 흐린 하늘이다. 알로에 가지 몇 개를 가위로 싹둑 자르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알아서 잘 큰다는 생각에 그동안 돌보기를 게을리했나 보다. 잎이 바싹 말라 허옇게 변했다. 여름에는 아기 볼처럼 탱탱할 정도로 수분을 머금고 있어야 할 잎이 시들시들하고 축 늘어졌다. 어떤 것은 좁은 화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옆으로 자리를 틀고 낑낑대며 세상을 향해 몸부림친다. 매일 아침 주스에 들어갈 싱싱한 것을 고르기에 바빴을 뿐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무관심했나 보다. 내 욕심에 정신없는 순간들을 돌아본다.
아침 설거지를 한 다음 대대적인 알로에 화분 정리에 나섰다. 화분을 내려놓고 상태가 안 좋은 입이며 줄기를 가위로 자른다. 모두 분갈이를 해 줘야 했지만 급한 대로 두 그루를 새 화분에 심었다. 시원한 물 샤워도 시켜주었다. 먼지 묻은 잎을 시원한 물줄기가 씻겨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한편으로는 까만 흙이 숨 쉬는 땅이 아닌 화분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아파트에 사는 일이 마치 공중부양 상태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땅은 곧 자연이기에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키워주지만 화분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은 까닭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 잎이 다 얼었다. 옛날 씩씩하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다 겨울과 봄을 보내고 여름에 친정에 가면 깜짝 놀랄 만큼 자라 있다. 고향집과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알로에의 다른 생활환경을 머릿속으로 나란히 올려 놓아보았다. 제주 섬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몸을 만들고 세월을 보내는 알로에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비바람을 맞고 온갖 어려운 세월을 이겨낸 징표로 돌담 아래 알로에는 꽃을 피우기도 했다. 우리집 초록 정원 알로에는 그런 세상이 있음을 알고나 있을까.
알로에는 사계절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항균작용에 뛰어나 벌레가 물리거나 뾰루지가 날 때 잎에서 나오는 끈적한 겔을 발라주면 효과 만점이다. 여드름에도 탁월하다. 사춘기 딸의 여드름 해결사로 피부를 보호해 주는 천연 진정제다. 알로에 잎을 적당히 잘라 냉장고에 두었다가 갈아서 팩을 만들어 얼굴에 바르면 다음날 빛나는 피부를 만나게 된다. 알로에는 면역력과 위, 장 등에 좋다고 해서 주스에 애용한다. 집에서 튀김이나 구이 등 요리를 하다 생기는 화상에도 최고다. 언제나 준비된 상비약인 셈이다. 그루터기마저 의자로 내어주었던 나무처럼 알로에는 내게 참 많은 것을 주는 ‘아낌없이 주는 알로에’다.
좁은 공간, 무엇하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곳에서도 열 그루도 넘는 알로에들은 그들만의 스타일로 살아내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알아서 한다’는 말을 마땅치 않아 하셨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아이가 도움 없이 어떤 일을 마무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베란다 정원 알로에 역시 돌봄 없이 살아가기는 힘든 일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살피지 않았던 일상을 돌아본다. 문득 생각날 때가 아니라 일정한 기간을 정해 살피는 항상심을 길러야겠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마음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