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다
하루를 집중해 보려 한다. 여름이 비에 잠겼다. 장대비가 내리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코로나로 집콕하는 일도 이젠 자연스럽다. 여름방학인 두 딸이 하루를 온전히 집에 머문다. 집안의 공기가 뭔가 이상하다. 적당히 무거움과 가벼움의 중간이다. 큰 애는 개학 날이 다가오는데 특별히 즐거운 일이 없다며 속상해한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운 일을 고민했다.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기다. 어때? 점심 먹고 나서는 카페에서 빙수나 맛난 음료도 먹고.”
“엄마 정말? 그래도 돼? 우린 좋지.”
아이들이 반기는 눈치다. 때가 때인지라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시간에 맞춰 가기로 했다. 동네에서 나름 돈가스를 잘한다는 집이 문을 여는 시간이 11시 반이다. 조금 일찍 가서 안전하게 먹고 오기로 했다. 11시 15분에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이미 식당에 도착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카드가 들어 있어야 할 휴대폰 지갑을 살폈다. 돈을 쓰러 가면서 빈손으로 가고 있었다. 마침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어서 급한 대로 돈을 인출 해서 쓰기로 했다. 오만원을 뽑았다.
신호등 불이 바뀌자 횡단보도를 건너 공원을 지나 열심히 식당으로 향했다. 무엇이든지 확실한 게 좋다. 다시 가방을 열었다. 가만히 있어야 할 돈이 없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잘못 본 것이라 여기며 몇 번이고 살폈다. 역시 없었다.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왜 안 들어가요?”
“응 아까 엄마가 돈 찾았잖아. 그게 없어. 어떡하지.”
방법은 하나였다.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허탈하고 속상한 마음에 습한 날씨까지 더해져 몸에 땀이 흐른다. 아이들은 말이 없다. 한 가닥 희망을 안고 편의점에 도착했다. 돈이 떨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는 아르바이트생의 한마디는 붙들고 싶었던 마지막 동아줄을 놓친 것처럼 당황스럽다. 어디에 숨어서 호시탐탐 기세를 발휘하려 하는 ‘화’라는 녀석이 꿈틀대며 나타났다.
“오늘은 식당에 못 가겠다. 집에 가자. 이게 무슨 일이야.”
애들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힘이 쭉 빠졌다.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분명 인출 명세표는 받았는데 돈을 어디에 둔 기억은 없다. 어떻게 하지, 편의점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아저씨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돈을 가져가지 않으면 도로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명세표에 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상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무인 카메라를 돌려보겠다고 했다. 적막이 흐르다 상담원이 명세표를 내가 받아들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설명했다. 돈을 가져가는 것을 깜빡한 것 같다며 기기 번호를 알고 있어서 확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1시간 이내로 연락해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조금의 희망이 생겼다. 결과가 어찌 됐든 기다려 보자고 마음먹은 순간 이성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배고플 시간이었다. 내 문제에 빠진 나머지 점심을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있던 닭고기를 꺼내 춘천 닭갈비를 만들었다. 쥐죽은 듯 엄마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이 식탁이 차려지자 긴장을 푸는 눈치다. 식당과 편의점을 거쳐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내 감정을 앞세워 상처를 주었다.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던 큰애는 제 탓인 것처럼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 정말 맛있어. 밖에서 먹었던 닭갈비보다 더 맛있는데.”
아이들이 엄지척 한다. 엄마를 탓하지도 못하고 마음을 졸였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시간이 약이다. 시계가 두 시를 달린다. 현금자동인출기 회사의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불과 두 시간 전에 벌어진 일과 요즘 내 생활을 돌아봤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진 남편 걱정에 에너지를 쏟고 있던 터다. 더불어 하루 동안 해야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했던 아침이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놓지마 정신줄!”
아이들이 즐겨봤던 웹툰 제목이면서 나를 향한 외침이다.
무엇을 하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허공에 붕 떠 있는 불안한 마음으로 일을 보려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호랑이는 커녕 스스로 문제를 자초한 꼴이니 마음을 붙잡지 못한 나를 바라본다. 반평생을 마음을 살피는 일에 힘써온 선생님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내가 살아보니 모든 일은 될 만큼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애써도 마음처럼 안되는 게 세상살이인 것을, 그러니 상황에 빠져들어 지금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말아요.”
나는 엄마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챙겨야 하는 책임이 있다.
“엄마, 나도 다 알고 있어, 내가 모르는 줄 알아. 엄마가 당황하는 순간 우리도 걱정되고 불안해져.”
막내가 다가와 한마디 건넨다. 정신 번쩍 들게 하는 따끔한 말이다. 이미 일은 생겼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해결에 집중해야 할 일이다. 누구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겼다고 남을 탓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기 만무하다. 다행히 오만원은 내가 인출기에서 빼내지 않은 게 확인됐고, 돌려받았다. 날씨만큼이나 답답한 마음을 식혀보기 위해 에어컨 리모컨을 들었다. 금세 집안 공기가 달라진다. 살아가는 일도 이랬으면 좋으련만, 그건 꿈일 뿐이다. 정신줄을 놓지 말고 살아가기, 어떤 순간에도 나를 구하는 지름길이다. ‘지금 여기에’ 머물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