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Jun 17. 2021

오늘부터 저녁 굶을까?

날씬함에 대한 불편한 시선


휴대전화 진동이다. 아이 학교에서 온 알리미 문자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에 대한 안내였다. 대충 훑고 넘어가지만, 이날은 꼼꼼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신경이 쓰이는 단어가 들어온다. ‘경도 비만’이 의심되는 경우 혈액검사가 이루어진다고 나와 있다.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금식해야 한다는 주의사항도 적혀있다. 순간 마음이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고 나서 별말이 없다.

“내일 건강 검진한다고 들었어? 때에 따라서 혈액검사도 해야 한다는데.”

“응 엄마, 근데 나 어쩌지? 애들 있는 앞에서 검사하게 되면, 그럼 나 뚱뚱하다고 소문나는 거잖아.”

“괜찮아, 그냥 정신없이 하니까 남들 신경 쓰고 그럴 일이 없을 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어가려 애썼다.    

  

다음날 아이는 아침을 걸렀다. 아무리 혼이 나도 밥을 챙겨 먹었는데, 식탁에 앉아 열심히 숟가락질하던 애가 없으니 허전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남편에게 상황을 얘기한 터라 별말이 없다. 서로가 불필요한 말을 아끼면서 식사에만 열중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다. 몇 번을 참다 먼저 말을 꺼냈다. 안 해도 될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들썩이는 마음을 잠재우지 못했다.

“검진은 잘했어? 피도 뽑고?”

“응 다 했어.”

그것으로 끝이다. 아이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저 그런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저녁으로 아이를 위해 감자탕을 끓였다. 맛있는 음식으로 아이의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날은 흐렸고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릇을 깔끔히 비웠다. 

“오늘 검사할 때 별일 없었지?”

“응 워낙 빨리했거든. 한 일 분 정도씩 한다 할 정도로 순식간에 그렇게 지났지 뭐.”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아이가 염려했던 것만큼 누구의 관심을 받는 일은 없었나 보다. 많은 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짧은 시간에 끝내야 하는 일이었기에 바람 불 듯이 지났음을 미뤄 짐작했다.   

  

아이와 난 먹는 걸 좋아한다. 칼로리에 적이라는 빵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저것 가리는 게 없다. 처음에는 예쁜 옷을 위해 살이 찌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동을 했지만, 이제는 건강이 우선이다. 아직 십 대인 아이가 이런 걸 알고 실천하기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학교와 학원, 친구 관계 등 일상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이유로 달콤한 것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도 힘들다.     

아이의 검진을 경험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검진이 건강을 살피기 위한 도구 이전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분위기가 아쉬웠다.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날씬하고 키 큰 아이들이란 말을 종종 한다. 이미 또래에서 겉모습이 상대를 평가하는 가치 기준이 되어버린 듯했다.   

    

예쁘고 싶은 건 당연한 인간의 욕구다. 이에 대한 갈증은 여러 산업과 의술의 발전으로 이어져 왔다. 잠자는 순간까지 놓지 않는 휴대전화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이미지에 벗어나기 힘들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얼굴과 몸을 가진 유명 스타들이 빛나는 이유다. 그들은 그것을 가꾸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열심이고 온갖 것들이 동원된다. 보통의 사람들은 아무리 해도 따라갈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아이는 이미 외모에 대한 기준이 생겼고 자신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긴다. 이건 자존감과 연결되는 것이어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내가 바라보는 아이는 살짝살짝 피어나는 미소가 아름다운 소녀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그들의 음악을 즐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고 감동할 줄 안다.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어 오랜만이야? 살 빠진 거 아냐? 난 살쪄서 걱정이야 운동도 못 하고.”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이 건네는 말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라고 안부를 묻기 이전에 나오는 인사 아닌 인사다. 티비 홈쇼핑에서도 노출의 계절 여름이라고 다이어트 관련 제품 판매가 연일 이어진다. 우리에게는 적당히 보기 좋은 몸매이지만 실제로는 극히 마른 체형을 가진 모델과 쇼호스트들이 대중을 설득한다. 이들은 사용 후기를 전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살과의 전쟁에 당장 돌입하라고 한다. 그 소리가 티비를 끄고 한참 지났지만 생생할 정도다.      


살을 빼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보는 냉철한 절제력이 뒤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아니면 안 될 정도의 동기가 구체적이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변화된 사람들을 보고 ‘독하다’라는 소리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엄마 오늘부터 저녁에 아무것도 먹지 말까?”

아이가 갑자기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한다. 절대 지킬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얘기를 꺼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껴두었다. 당연한 아이의 마음이지 싶다.  

    

“오늘 검사는 어떻게 됐어? 어제 얘기 듣고서 마음이 안 좋더라고 애한테 뭐라 말하기도 그렇고.”

남편이 잠자기 전에 묻는다. 상황을 설명해 주니 다시 결과에 대해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나오지 않을까? 그때 보고 더 몸 챙기면 될 거예요.”

검진은 딱 여기까지가 정답인 듯하다. 현재 상태를 보고 생활습관을 체크해 보는 객관적인 자료면 충분하다. 몸을 바라보는 마음을 잘 키워가는 것, 어른에게도 어렵고 아이에게는 더더욱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우리도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향기를 부르는 여름날 찐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