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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6. 2021

엄마의 향기를 부르는 여름날 찐빵


아침부터 냉장고에 얼려둔 쑥 한 덩어리를 꺼냈다. 몇 주 전에 아이가 졸리 눈을 하고 갑자기 찐빵이 먹고 싶다는 얘기를 불쑥 꺼냈다. 언제 해 주겠다고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종일 비가 오는 날이다. 비는 내게 휴식을 전한다. 햇살이 그립다가도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비를 기다린다. 강하지 않지만 쉼 없이 내리는 비는 은근한 고요를 만든다. 서둘러야 할 필요가 없으니 나만의 속도가 가능하다.      


큰아이는 학교로 가고 막내는 온라인 수업 중이다. 큰 양푼에 밀가루를 부었다. 이틀 전 저녁 퇴근하던 남편은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왔다. 그것부터 냉장고에서 꺼냈다. 우유와 소금,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저울로 개량하기도 하지만 귀찮다. 그동안처럼 눈대중으로 했다. 우유와 막걸리를 잘 흔들어 밀가루에 부었고 말랑해진 쑥을 넣었다. 주걱으로 휘휘 저어 위에 수건으로 감싼 다음 김치 냉장고 위에 두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길 무렵 반죽을 보니 생각만큼 발효상태가 별로다. 처음에는 쑥 찐빵을 만들 요량이었다. 지금의 상태로는 너무 질어 둥근 모양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어찌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종이컵이 생각났다. 종이컵에 넣고 컵케익 스타일로 만들기로 했다. 찜통에서 찌는데 빵이 부풀어 오른다. 그럭저럭 절반의 성공인 듯싶었다.     


엄마는 입이 심심할 때 먹으라며 가끔 찐빵을 만들어 보내 줬다. 쑥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밀가루 빵이다. 그때마다 강조하는 엄마의 말이 있다.

“거기에 우유하고 막걸리 하고 계란만 들어간 거야. 물은 하나도 넣지 않았어.”

엄마의 정성이 가득하다는 걸 에둘러하는 얘기다.       


이스트 대신 막걸리로 빵을 만들게 된 건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부엌에서 엄마의 움직임을 살피는 일에 빠져있었다. 그 기억이 이제 내 머릿속의 레시피가 되었다. 며칠 전의 일도 깜박할 때가 있지만 신기하게도 음식에 대한 것은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선명하다. 오감으로 그려낼 정도니 감탄할 뿐이다.      


여고생 시절, 지금처럼 여름이 시작되어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할 즈음이었다. 주말이라 집에 갔다가 일요일은 친구와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시내로 가려는데 엄마가 쑥 전을 내밀었다. 초록으로 온통 뒤덮여서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정체조차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엄마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꾸 망설여졌다. 친구 앞에서 그걸 꺼내놓기가 부끄러웠다. 도시에서 크고 자란 친구 입맛에 맞을지가 걱정이었다. 

“와! 이거 뭐야? 맛있다. 쑥 맛이 나네. 네 엄마 음식 잘한다.”

언제나 남을 배려하던 친구는 참으로 새로운 맛이라며, 먹고 또 먹었다.     


여름이 시작될 즈음 엄마는 봄에 캐서 데쳐둔 쑥을 꺼냈다. 가을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여름은 쉼 없이 움직여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시기는 하룻밤 자고 나면 풀이 다시 자랄 정도로 생명력이 왕성해서 농부들에게는 힘든 계절이었다. 엄마의 쑥 빵과 부침개는 그때에 잠시 숨 고르게 하는 처방이었다. 간식이 마땅치 않던 시절 과수원 그늘에서 한 입 먹으며 충전하고 뙤약볕으로 나갔다.     

접시에 쑥 빵을 몇 개 담고는 아이를 기다렸다. 깜짝 선물처럼 감탄할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그리울 만큼 보고 싶다. 집으로 오려면 족히 한 시간 이상 남았다. 뜨거운 것을 호호 불며 혼자 먹었다. 쑥 향이 가득 올라온다.      


처음 가졌던 목표와 달리 궤도를 수정해야 했다. 아기 볼처럼 부푼 찐빵을 그렸지만, 반죽이 마땅치 않은 탓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고민하다가 찜 케이크로 경로를 바꿨다. 넓은 의미로 빵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으니 별일 아니다.      


여름과 찐빵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와 약속을 지킨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은 엄마의 포근한 사랑이 그리웠던 게 아닌가 싶다. 엄마로 살아가지만 내 엄마의 살을 비비고 한동안 아무 얘기나 꺼내어 수다를 떨고 싶다. 나도 몰래 꼭꼭 숨겨둔 감정이 살며시 고개를 든 날, 찐빵은 엄마를 대신할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산으로 가버린 빵이었지만 잠시 행복했다. 어린 나의 어느 여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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