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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24. 2021

나를 만나는 바느질 여행

  

삼십 년 만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바느질하게 되었다. 지인이 일하는 작은 도서관에서 제로 웨이스트 살림법 수업을 진행한다며 관심 있으면 들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환경과 관련해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프로그램을 살피는 데 강의가 두 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이었고, 여러 가지 만드는 게 있어서 망설이다 참여하기로 했다. 강의 첫날이었다. 도서관에 들어서니 나무 책상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가 마련되었다. 입구에는 수업과 관련 있어 보이는 천과 가방 등 여러 가지가 놓였다.     


“사람들이 아직 다 오지 않아서요. 우리 주머니부터 만들고 강의는 나중에 하는 거로 할까요?”

선생님의 제안에 수강생 대여섯 명이 동의한다. 천과 바늘, 무명실과 끈을 나눠주었다. 집에서 계획서를 살펴보면서 첫날이니만큼 수업에 대해 설명만 할 것이라 예상했다.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바느질이라니 강한 거부감이 일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노안이 찾아왔는지 작은 글씨를 보는 게 쉽지 않더니 바늘귀 꿰는 일은 더 어렵다.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하려는 참이다.     

“양쪽을 홈질로 하세요. 바느질이 예뻐야 좋잖아요. 바느질이 서툰 사람들은 자로 선을 긋고 하면 훨씬 깔끔하게 될 거예요.”

선생님의 설명이 다시 한번 이어졌다. 어쩌지 하고 혼자 갈팡질팡하던 차에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침착한 성격의 그는 기꺼이 달려와 1센티미터 사이를 두고 선을 그어 준다.    

 

이제부터 본격 바느질이다. 선을 따라가 보지만 비뚤비뚤 잔뜩 취기 어린 누군가의 걸음이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옆에 있는 선생님께 물었다.

“이렇게 듬성듬성하면 쌀이 다 빠져나가 버리겠어요. 다시 뜯어내서 해요. 잘 보세요.  처음에는 어려워도 바느질이 재미있어요.” 

잠깐 내 손을 거쳐 간 흔적은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고수의 손길이었다. 바늘을 들어 천을 잡고 천천히 이어나가는 과정마다 리듬과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바느질, 학교 다닐 때 배우지 않았어요? 잘할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했는데 전 항상 틀리더라고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해도 어디부턴가 잘못되어 있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자신이 없고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되었어요.”   

  

왜 그리 구구절절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말을 해 놓고서도 혼자 멋쩍었다. 내가 선생님께 위로나 공감을 바랐나? 그가 자리를 비우고 혼자 바느질을 하면서 왠지 부끄러웠다.     


“어른이 되면 다 잘 되니까. 걱정 말아라.”

엄마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일에는 유독 자신이 없어하는 내게 어른이 되면 괜찮아진다며 응원을 보냈다. 크면 가능하다는 말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면서도 한편으론 아닌 듯싶다.     

  

문제가 됐던 상황이 두려움을 느꼈던 일이라면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초등학생의 바느질이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실기평가라는 이름으로 등급을 매기는 순간 즐거움은 사라졌다.    

 

좋은 점수를 맞고 싶은 마음에 엄마와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긴 안목에서 보면 불필요한 일이었다. 난 어느 날 갑자기 예상에 없던 문제가 발생하면 타인의 도움이나 위로에 기대려 하는 편이다. 거슬러 올러가 보면 어린 시절 경험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이것이 핑계가 되어 지금의 나를 어찌하려 한다면 그것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바느질은 그럭저럭 되어갔다. 신기하게도 한 땀 한 땀 해나가는 순간 그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의 행동에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일상을 나누는 작은 소리가 들려도 그건 그냥 지나가는 구름 같다.     


중반 정도를 지날 무렵 한 가지가 스쳤다. 어린 나는 잘하지 못한다는 것에 심각했다면 지금은 ‘그냥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라는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처음에 낯설었던 바늘과 하나가 되어 가만히 천을 붙여가는 작업에서 긴장감은 찾기 힘들다.   

 “단추도 달고 바느질을 좀 할 줄 알아야지. 좀 신경 써서 해 봐라.”

“엄마 나 세탁소에 맡길 건데. 못해도 돼”

엄마의 당부에 항상 이렇게 답했다. 지금에야 절실히 느끼는 것이지만 바느질도 필요하다. 물론 동네 세탁소가 있지만 단추 하나를 달기 위해 옷을 맡기는 건 비용 이전에 불필요한 시간 낭비라 여겨진다.   

서툰 바느질의 모습도 ‘아 내가 이렇게 했구나’라는 마음이다. 다른 감정이 덧입혀지지 않는다. 단지 불편하다는 생각, 잘 배워 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수의 손길을 눈동냥으로 살짝 배웠다. 이제 홈질은 천천히 그래도 세심히 할 마음이 생겼다.     


무엇을 하는 과정에서 대충 지나지 말아야겠다. 잘 보고 듣고 익히는 순간이 모여야 자연스럽게 굴러가게 된다는 걸 절감한다. 편리함을 만드는 건 스스로 해 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기다리며 즐기는 일이다.    

 

예정에 없는 일에서 나도 몰랐던 나를 바라보는 건 신선했다. 가만히 앉아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을 향해 가는 작은 바늘의 힘에 놀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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