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煎)을 좋아하는 이유

여고생은 엄마가 되었다

by 오진미



# 煎을 처음 만든 날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다. 부모님이 친목 모임이 있어 저녁에 집을 비웠다. 돌아오기까지 서 너 시간은 자유다. 그때 생각해 낸 게 동그랑땡이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고기를 발견하고 마음이 요동쳤다. 맛나게 만들어서 동생과 함께 먹고 싶었다. 서툰 칼질로 고기를 다지고 두부와 집에 있는 야채들을 모조리 넣었다. 너무 질퍽한 것이 왠지 불안했지만 밀고 나갔다. 한편에 있던 곤로를 부엌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나무 방석에 자리를 잡고 기름을 프라이팬에 두르고 한 숟가락씩 떠 넣었다. 노릇해질 무렵 뒤집으려 하니 모양이 다 망가졌다. 다음에는 잘해야지 마음먹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동그랑땡에 손을 댄 순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팬에 모두 부어서 노릇노릇 해지면 먹기로 했다. 세월이 묻어나는 프라이팬은 반죽이 달라붙었다. 어느 쪽은 검게 타고 엉망이 되었다. 어찌 됐든 맛보고 싶은 마음에 적당히 익은 것을 입에 넣었다.

“아 짜다.”

이 한마디가 내 첫 작품, 요리에 대한 솔직한 평가였다.

완전 소금이었다. 급하게 사태를 수습했다. 팬에 있는 것들을 싹싹 모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한밤중에 설거지를시작했다. 내 짧은 요리, 전과의 만남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17살 여고생의 자취 요리

17살 여고생, 이때부터 본격적인 내 요리가 시작됐다. 언제나 과수원 일에 바쁜 엄마를 대신해 가끔 간단한 국을 만들었던 게 전부였다. 그러다 제주 시내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삼시세끼, 나를 위한 밥상 차리기가 시작됐다. 점심 도시락 챙기기는 기본이고 때로는 야간 자율학습이 있는 날에는 저녁까지 준비해야 했다. 아침에는 나를 위해 밥하는 엄마인 동시에 학생인 1인 2역을 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짠한 마음이다. 부모님에게 용돈 받고 사는 자취생의 생활이라는 게 뻔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착한 아이였던 나는 언제나 경제적 비용과 효과를 따지고 시장을 봤다. 주말에 집에 내려가 가져온 반찬이나 재료들로 꾸려갔지만 장보기도 종종 필요했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 슈퍼에서 몇 가지를 사는 게 전부였다. 참치캔, 콩나물, 두부 등이 내가 애용했던 재료들이다. 햄 같은 것은 어린 마음에 비싸다는 생각에 몇 번 가졌다 놓았다 하다 결국 마음을 접는 일이 다반사였다. 잠자기 전 내일 도시락 반찬을 고민하다 어느 날 전이 떠올랐다. 모든 재료가 어울리고 내 맘대로 만들어도 꽤 그럴싸한 반찬이 되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요리 중 하나인 전은 이렇게 탄생했다.


# 착한 재료, 착한 맛 참치 전

참치 전은 고등학교 3년 동안 도시락에 김치만큼이나 단골로 등장했다. 맛도 맛이지만 착한 재료들로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자주 만들었다. 주인공인 참치는 캔에 들어 있기에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다. 지금도 종종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 참치 전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어른에 이르는 자취생활 내내 최고의 반찬이 되었다. 참치 전 만들기는 간단하다. 양파와 두부 당근 등 집에 있는 야채를 다지고 나면 참치캔에 담긴 참치 서너 스푼을 넣는다. 여기에 약간의 밀가루와 계란 하나를 넣어 잘 섞어서 달궈진 팬에 적당한 크기로 떠 넣는다. 기름을 많이 두르지 않아도 된다. 중간 정도의 불에 앞뒤로 노릇노릇 익히면 끝이다.


내 자취 시절 밥상을 책임지던 건 낡은 석유곤로였다. 엄밀히 말하면 석유풍로라는 표현이 맞지만 어릴 적 익숙함 때문인지 풍로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성냥에 불을 붙인 다음 곤로 심지에 불을 지피면 불이 서서히 타오른다. 화력이 약해지면서 기름을 다 써간다는 신호다. 동네 작은 슈퍼에서 지금으로 치면 1,5리터 크기의 병에 담아 석유를 사 왔던 기억이 난다. 밥은 밥통에서 하고 반찬은 곤로가 책임졌다.


요즘 혼밥 얘기로 야단법석이다. 난 이미 조용히 여고생 시절부터 혼밥을 해 왔다.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에 소박한 밥상이지만 나를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그래서 동이 트기 전 새벽부터 하루가 시작됐다. 자취생이지만 깔끔하게 도시락을 싸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을 떨었다,

“이거 엄마 솜씨야?”

“아니 아침에 내가 만들고 왔는데.”

“너 정말 대단하다. 완전 요리사인데. 우리 엄마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 서넛이 내 참치 전을 볼 때 가끔 감탄했다.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친구들의 이런 반응은 더욱 도시락 반찬에 정성을 들이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아마 공부보다 더 마음을 쓰지 않았나 싶다. 아마 이때부터 전(煎)에 대한 사랑이 시작됐나 보다.


# 전을 사랑하는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난 무조건 전으로 만들어 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반찬이 없거나 애매한 상황일 때는 있는 재료를 모아서 전을 만들면 근사한 한 끼가 된다. 전의 세계를 나름 탐구해 보았다. 전은 세상 모든 식재료에 열려 있다. 여러 재료를 섞어서 만들 수도 있지만 단품으로도 훌륭하다.


요즘같이 가지가 많이 나는 계절에는 가지에 살짝 소금을 뿌렸다가 밀가루 옷을 가볍게 익히고 계란물에 담갔다 꺼내 익히면 끝이다. 깻잎 전도 일품이다. 다진 돼지고기를 깻잎 사이에 넣어도 되지만 깻잎만으로도 훌륭하다. 늙은 호박은 곱게 썰어서 크게 전을 부치면 맛있다. 여름 햇살 아래 초록으로 튼튼해진 풋고추 역시 요즘 최고의 전 재료가 된다. 고추를 채 썰고 밀가루에 소금 대신 국간장이나 양조간장을 살짝 넣어 간한 다음 편한 대로 지져내면 풋고추전 완성이다. 아삭아삭한 맛이 더운 여름 입맛 잃은 밥상에 활력을 선물한다. 은은한 불에 식용유를 두르고 전을 지져내면 튀김의 바삭함 대신 은은하면서도 촉촉한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춤춘다. 마치 햇살 강한 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길을 걸어가는 느낌 같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호박전

# 오늘 저녁은 호박전

저녁에 남편에게 호박전을 두 장 부쳐주었다. 코로나로 주말에도 근무하는 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후하게 인심을 쓰기로 했다. 엄마가 택배로 보내준 늙은 호박이 그만 안이 썩어 있었다. 바다 건너 날아온 녀석이 그렇게 돼서 마음이 안 좋다. 상한 부분을 도려내고 나니 먹을 수 있는 게 몇 조각되었다. 저녁을 준비하다 호박이 생각났다. 껍질을 벗기고 채를 썰었다. 우리밀 부침가루에 적당히 물을 넣고 호박과 잘 섞이도록 했다. 기름을 두른 팬에 반죽을 한 국자 떠 넣었다. 노란 호박이 익으면서 나오는 투명한 빛이 군침 돌게 한다. 호박전은 적당히 달콤하고 밀가루와 어울려 부드럽다. 신랑 혼자 어느새 뚝딱 접시를 비웠다. 남편에게 잠깐의 위로와 휴식이 되는 음식이 됐으면 좋겠다.


호박꽃이 며칠을 피었다 지고 나면 작은 열매가 맺힌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호박이 통통해지고 초록이던 호박은 속은 노랗고 겉은 주황에 가까운 오묘한 자연의 색을 만들어 낸다. 호박이 그동안 나름의 세상의 풍파를 겪고 완전한 모습을 갖췄으니 그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박전 하나로 생각이 많아졌다. 전을 좋아하던 아이가 아줌마가 되었다. 여전히 전을 즐기지만 이제는 내가 아닌 남편과 아이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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