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를 받은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전화가 울린다. 누구지 마음이 덜컹한다. 엄마다.
“오늘 물외랑, 가지, 호박 보냈다. 오늘 장 보러 가서 사고 올까 봐. 밭에서 일하다가 연락한다. 끊는다.”
오늘은 엄마 목소리가 살아있다. 언제부턴가 엄마에게 아침이 밝아 오는 건 밭에 갈 시간이 되었다는 의미다. 혼자 살아가기 올해로 11년째다. 엄마를 가장 기다려 주는 곳, 과수원으로 향하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며 집으로 돌아오면 마무리된다.
엄마에게 밭은 일하는 공간 그 이상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별의 아픔을 소리 없이 받아주며 위로받는 고마운 곳이다. 엄마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오늘은 일하다 나처럼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혼자 소리 내어 크게 울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있던 나무들은 족히 30년은 같은 자리에서 자랐다. 매해 전지 작업을 해도 숲을 이룰 만큼 울창해졌다. 일하다 말고 밀려오는 감정을 엄마는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철저히 혼자인 공간에서 흐느꼈을 엄마가 그려졌다. 그동안 감당하기 버거웠을 슬픔이 겹겹이 쌓여 파도가 됐나 보다. 전화기 너머로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매일 일을 하면 할수록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게 농부의 삶이다. 집에서 쉬라는 말에 엄마는 항상 밭이 편하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 자꾸만 눕고 싶어 진다. 누우면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마음이 울적해져.”
몸을 놀린다는 것은 생각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는 최고의 명약이다. 오로지 지금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온몸을 다해 땀이 날 정도로 힘을 쏟으니 잊게 되고 시간이 흘러가는 법이다.
엄마는 40여 년을 함께 한 아버지와의 이별을 하루하루 일하며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금세 알아차리는 게 땅이었다. 엄마는 누가 뭐라 해도 가장 정직한 게 흙이라고 틈만 나면 말했다.
“이젠 늙어가는지 자꾸 아프다. 밭에다 채소들 심는 것도 그냥 씨만 뿌리면 되는 게 아니야. 풀도 뽑아야 하고 일해야 하니 귀찮다. 올여름은 그래서 심은 것도 없어.”
말은 이렇게 하셨지만 빈 땅이 보이면 바빠지는 게 농부의 마음이다. 긴 장마와 더불어 씨를 뿌려도 새들이 땅을 파 먹어 버리는 까닭에 되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택배가 벌써 서너 번째 배달된다.
짙은 보라색 가지며 깨질세라 신문지에 돌돌 말려오는 물외, 여름 햇볕 아래 익어간 큰 호박까지 지금 우리 과수원 한편에서 자란 여름 채소들이 식탁 위에 가득하다. 엄마의 땀방울이 이것들을 키웠다. 언제부턴가 택배를 받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햇살을 친구 삼아 일하는 까닭에 피부는 검게 그을리고 검버섯이 늘어난 엄마의 앙상한 손과 얼굴이 스친다.
엄마를 원망했던 적도 많았다. 심술 난 아이처럼 어릴 적 힘들었던 얘기를 하며 엄마의 위로를 기대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한결같다.
“엄마 혼자 있는 지금 내게 말하면 어떡하란 거니. 그때 말하지 그랬니. 아이들이 커가면 엄마를 헤아려 줘야 하는데 옛일을 꺼내어 놓고. 내가 힘든 거는 아무도 모른다.”
마음이 안 좋다. 오랜만에 친정 온 딸에게 어떤 것이든 품어주는 엄마를 기대했던 나를 탓하곤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때의 내가 미워진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을 오롯이 바라보게 된다. 엄마가 살아왔던 세월의 무게를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맘껏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장성한 자식들이었지만 살아가는 게 외줄 타기 하듯 힘들었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 주고 싶었던 엄마였다. 온몸으로 땅에 기대어 열심히 살았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자식을 도왔다.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었던 적이 별로 없다. 지난가을부터 엄마가 종종 전화를 한다. 보통은 안부를 묻는 일에서 시작해 엄마의 힘든 일상을 얘기한다. 어느 날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때로는 밭에서 일하다 심심해서 연락했다고 한다. 엄마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제야 생각해 본다. 엄마의 삶에 대해서도 말이다. 살다 보니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그러면서 어릴 적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색 한 번 하지 않던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조금만 걱정스러운 일이 있으면 예민해져 애들을 불편하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말이다.
엄마도 얘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엄마의 삶이 그려졌다. 마음 깊은 곳에 큰 돌덩이를 쿵 하고 내려놓은 것처럼 묵직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왔다. 아마 이때부터다. 내 감정을 담지 않고 엄마의 일상을 들어주게 됐다. 말을 하다가 엄마와 함께 울었다. 내가 엄마로 살아온 십여 년의 시간과 엄마가 홀로 살아온 십 년의 시간이 겹쳐졌다. 내일 낮이면 엄마의 택배가 온다. 감사의 전화를 해야겠다. 엄마의 가슴으로 키워낸 것들이다. 엄마의 얘기를 들어야겠다. 뜨거운 햇볕 아래 잠깐 동안 그늘이 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