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Nov 25. 2021

고구마튀김, 거리를 두어야 할까?


아침부터 하던 일을 점심 즈음에 끝냈다. 집에 있는 문들을 활짝 열어 바깥공기가 집안으로 가득 들어오게 한 다음 내 팔뚝의 절반 정도인 무 같은 고구마 하나를 씻었다. 어제저녁에 아이에게 고구마튀김을 해주기로 약속한 까닭이다.      


튀김은 가끔 생각 나는 먹거리다. 동네 중심의 상가가 밀집해 있는 사거리에는 포장마차 분식점이 세 곳 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기름 냄새에 이끌려 잠깐 멈추게 된다. 오징어, 고추, 계란, 식빵 등 튀겨져 나온 것들을 얼핏 보고는 한번 사 먹을까 하다 다시 그만두곤 한다. 먹고 싶은 마음이 최고조일 때 사서 집에서 먹어보면 기대했던 맛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것이 먹는 장소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식욕이 줄었기 때문인지, 원래 튀김 맛이 별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막대형과 둥근 반달과 비슷한 모양의 두 가지로 고구마를 썰었다. 살짝 밀가루를 입히고는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었다. 기름에 반죽을 살짝 떨어트려서 떠오르면 적당한 온도다. 그렇게 한 30분이 채 안 될 무렵 튀김이 한 접시 가득 만들어졌다. 하나를 집어 들고는 맛이 괜찮은지 먹어보았다. 혼자 감탄할 만큼 고소하고, 적당히 바삭거리며 부드럽다.      


접시에 고구마튀김 서너 개를 들고 와서는 눈은 텔레비전에, 입은 열심히 운동 중이다. 몇 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그릇이 비었다. 몇 발자국만 가면 있는 튀김 바구니에 계속 눈이 간다. 마음속으로 마지막을 외치며 다시 다가가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몇 개월 만에 나를 찾은 튀김,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이것은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한 먹거리로 상황이 바뀌었다.     

분명 맛있게 먹었다. 누구의 말처럼 그러면 제로 칼로리가 되어야 하는데 저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의심할 만큼이었다. 점심도 혼자 양껏 먹은 터였고, 여기에 기름옷을 입은 튀김까지 더해졌으니 상상해 맡기도록 하겠다. 그러고는 마음 한편에 급하게 후회가 밀려왔다. 이때 드는 생각은 음식을 만드는 일은 좋아하지만, 먹는 일에는 거리를 두고 싶다는 것.      


“난 튀김을 만들다 보면 기름 냄새를 너무 맡아서 막상 끝나고 나면 먹기가 싫어져.”

가끔 이런 얘기를 하는 이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만드는 일로 끝나니 적당한 만족하고 더 이상의 후회가 밀려오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먹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데 맛있는 음식을 하는 일에 적극적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도 던져보았다. 이 두 가지를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일이 최선이긴 하지만 너무 어렵다. 난 만드는 일에 적극적인 만큼 확실히 음식을 잘 먹는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학교 가기 전 눈도장을 찍은 먹거리가 사라지는 날에는 기분이 별로다. 한껏 부풀었던 마음이 풍선 터져버리듯 실망하게 되었다. 몸이 아주 안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밥맛이 없는 날이 별로 없고 항상 맛있다. 찬이 특별하지 않아도 먹는 일은 즐거운 일상이다. 이런 내게 이성적으로 조절하는 일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후회와 반성, 새로운 다짐의 세 가지가 하나로 이어져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음식을 배가 불러서 답답할 만큼 먹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야.”

온 가족이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정신없이 먹는 나를 보며 이런 말을 종종 건넸다. 적당히 먹어야 몸에 부담이 없고 그것이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고 강조했지만 내게는 그저 잔소리로 들렸다. 아버지는 좀 마른 편이셨고, 밭에서 일을 워낙 많이 하는 탓에 살찔 겨를도 없었다. 고구마튀김을 만들고 나서 잔뜩 먹는 나를 향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아버지의 말처럼 순식간에 무거워지고 답답해지는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잘 먹었으면 그것으로 끝이어야 하는데 편안하지가 않다.     


보글보글 끓는 기름에서 잘 익어가는 노란색이 흐르는 고구마튀김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하얀 튀김옷이 진한 색으로 변해가는 건 잘 익어간다는 설명이다. 집계를 들어 하나씩 기름에서 꺼내놓으면 향긋한 향이 잠시 흐른다. 그리고 몇 초 후 먹었을 때의 바삭함은 참 경쾌하고 상쾌한 소리다. 이때 한 세 개 정도를 먹고 끝내야 최고의 행복한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생각 역시 돌고 돌기 마련이다. 한두 시간 우울했던 마음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안되면 되는 순간까지 시도해 보면 될 일이다. 튀김을 너무 많이 먹었다고 자책했다. 내게 즐거움을 주는 음식 만드는 일에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잠깐의 고민도 했다. 기름에 고구마가 들어가 샤워하듯 튀김이 익어가는 그 순간을 바라보는 게 행복한 일인데 그것을 멀리해야 할 일인가 싶다.  

    

먹는 일과 만드는 일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힘이 드는지를 생각하면 답은 후자다. 음식을 완성하기 위해선 재료를 손질하고 레시피를 검색하거나 그동안의 노하우를 떠올리며 집중해서 만들기 마련이다. 가끔이지만 다른 사람이 차려준 밥상에 감동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절제의 미덕만 조금 키우면 되지 않을까. 말처럼 쉽지 않은 높은 산 같은 일이지만 말이다. 

“엄마 튀김 맛있어.”

친구 집에서 놀다 온 막내의 한 줄 평이다. 혼자 튀김을 잔뜩 먹고 방황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었다. 아무튼 적당히라는 말을 새겨두고 싶은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각 어묵탕과 맛있는 것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