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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28. 2021

가슴 뛰게 한 섞박지

     

한두 달부터 마음속에 꼭 담고 있었다. 마트나 노점에 놓인 무를 볼 때마다 이것을 떠올렸다. 하고 싶은데 자꾸 뒤로 미뤘다. 토요일은 언제나 바쁜 하루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평일보다 정신이 없다. 온 식구가 함께 밥을 먹고 집안에서 북적거리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족 중 누가 먹고 싶다 하는 일도 없었다. 김치를 담가야 할 시기가 돌아오고는 있었지만, 묵은지도 있었고 전에 만들어 놓은 것도 며칠은 충분히 먹고을 정도였다. 자꾸 이상하게도 섞박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뜨끈한 국물 요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김치에 대한 마음이 자꾸 커가기만 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몸은 나른하고 널브러지고 싶었다. 텔레비전을 보고 책을 뒤적이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피곤하고 잠깐 잠을 자고도 싶은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때라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안 해도 괜찮지만 하고 나면 뿌듯함이 있을 것이고, 또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지난밤에 위층 언니가 농사지은 무와 쪽파까지 주고 갔다. 재료는 집에 모두가 준비되어 있었다. 내 몸만 움직이면 된다. 귀찮고 하기 싫을 때 그대로 멈춰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나중에는 꼭 후회가 따랐다. 벌떡 일어나서 우선 무를 씻고는 다른 사람들의 레시피를 검색했다. 그냥 내가 하는 김치 스타일대로 해도 큰 무리가 없는 듯했다. 

    

무 껍질을 다 벗기기보다는 하얀 부분은 적당히 벗기고 초록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은은한 초록빛이 보는 것만큼 맛도 좋다고 한다. 설렁탕집에 가면 대충인 것 같으면서도 어느 정도 일정 모양을 유지하는 정겨운 섞박지를 봤었다. 그렇게 하기는 힘들고 그냥 큰 반달 모양으로 썰었다. 무를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자르면 끝이다. 중간 정도의 굵기로 썰어놓은 다음 천일염으로 간했다.    

  

무가 숨죽여가는 동안 양념을 만들었다. 밥과 새우젓, 멸치액젓, 사과와 양파, 냉장고에 둔 멸치육수, 마늘까지 믹서기에 놓고 갈았다. 예전에는 강판에 갈았지만 요즘은 손목이 아프고 힘들다. 내 몸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간단하고 편리한 걸 선택했다. 순간에 윙하고 갈리니 어떤 맛일지 상상이 안 된다.    

  

여기에 올여름에 잘 익은 고추를  말리고 갈아놓은 태양초 고춧가루를 부었다. 걸쭉하게 양념을 만들어 두었다. 색이 참 곱다. 공원이나 들판에 피어있는 꽃, 우리 아파트 화단에 있는 국화꽃이 예쁘다 여겼는데 이 김치 양념 색이 그에 못지않다. 남편과 막내는 텔레비전에 열중해 있고 혼자 조금씩 흥분되는 순간이다.    

  

김치를 만드는 일이 이리 설렐 수 있을까 싶다. 불과 한두 시간 전에 망설이며 뒤로 미룰까를 고민하던 내가 자리를 박차고 지금의 이른 모습이 대견하다. 50분 정도가 지난 무를 가볍게 씻어내어 소쿠리에서 물을 뺐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놓고 버무렸다. 비닐장갑을 낀 손에 움직이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흰 무에 고운 고춧물이 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쪽파와 검정깨를 넣어주니 완성되었다.   

  

양념 가득한 손으로 무를 하나 들어먹었다. 입안에서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강하지 않은 은은한 무의 향과 양념이 적절히 어울린다. 김치가 아닌 샐러드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을 만큼이다. 큰 보배를 얻은 것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한두 개를 연이어 먹었다. 짜지 않으니 자꾸 손이 간다.      


작은 통 하나에 섞박지가 가득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담는다고 알려진 이것이 계절을 알맞게 택한 것인지 신기하게 맛나다. 특별한 양념을 한 것도 아니고 평소 대로다. 단지 무를 크기와 두께를 달리해서 썰었을 뿐인데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하다. 가끔 순댓국집에서 먹는 그 맛이 그리웠다. 내가 아는 무로 만든 김치인데 뭔가 다른 느낌, 그것이 궁금하기도 해서 직접 해보고 싶었다. 김치통을 두세 시간밖에 두었다. 냉장고에 들어가기 전에 그렇게 해야 더 맛들 것 같았다. 감과 귤을 가지러 오가는 동안 김치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조금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나를 재촉해서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저녁에 배추 된장국과 더불어 김치와 함께 먹으며 하루를 정리했다. 식구들은 김치가 새로워진 걸 아는지 모르는지 무반응이다. 그럼에도 불만이 없다. 내 눈빛은 이 녀석을 향하고 있고 완전히 혼자만의 기쁨에 사로잡혔다. 주부라는 업의 특성 때문에 김치에 유독 특별한 마음일까? 설거지하면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섞박지로 행복을 느낀 건 김치 이전에 나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에 달했다.      


“나 그 옷도 사고 싶고, 이것도 하고 싶고 그래.”

“언니, 지금 하면 돼.”

항상 동생은 내가 선택의 기로에서 물으면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고 한다. 가끔은 그게 무심한 듯 들리기도, 때로는 내 사정을 몰라서 그런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다시 곱씹어보니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원한다는 마음이 들 때 시작해야 자발적인 에너지가 더 커진다. 아침에도 김치를 접시에 꺼내놓으며 흐뭇한 마음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지금 여기’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나 역시 종종 잘 꺼내 놓는다. 쉬운듯하지만 어렵고, 영원히 숙제로 남을지도 모른다. 내게 집중하는 일이 그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섞박지를 만들며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났다. 그래서 이건 그냥 김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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