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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30. 2021

생강 생각


일주일 만이었다. 며칠 동안 이어진 미뤄둔 숙제를 마무리했다. 햇생강이 나올 내년 깊은 가을까지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생강청을 담갔다. 매해 김장보다 더 신경 쓰는 일이다. 밭에서 캐낸 흙이 채 마르지 않은 싱싱한 생강을 사서 청을 만든다. 동네 노점이나 마트에 생강이 나올 때면 스멀스멀 이것을 해야 한다는 다짐이 싹튼다.     

얼른 시작하면 몇 시간이면 끝낼 일이 이리도 미뤄졌다. 시월에는 바쁘다는 핑계였다. 한가해졌음에도 그 일에 푹 빠지기가 힘들었다. 생강을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는 일에 뛰어들기 싫었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마음이 계속되었다.  사다 놓은 생강이 말라가면서 점차 풀이 죽어 가더니 싱싱함을 잃어갔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지난 금요일에 생강을 깨끗이 씻어서 소쿠리에 건져놓았다. 아침저녁 찬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생강에 스며들었던 물기가 다 사라진 지 오래다. 빨리해야 하는데 얼른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일요일 점심을 먹고 나서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다른 가족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칼을 들어 생강을 다듬었다.      


부지런히  껍질을 벗겨보지만 더디다.   그 옆에는 내 손가락 세 개 이상을 붙여놓은 듯한 개량 생강이 기다린다. 이건 성미 급한 이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편리한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을 위한 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크다. 색 또한 봄을 알리는 산수유 꽃처럼 강하지 않은 노랑이 부드럽고 따듯하다. 익숙한 이것보다는 친한 언니가 준 토종 생강에 자꾸 마음이 간다.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자라온 것으로 내 곁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손질하기 편한, 요즘 나는 생강을 택했다.


40여 분 집중하다 그만하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이 휴일을 보내고 있는데 혼자 생강에 전력을 기울이는 게 기분이 별로였다. 하루를 보내고 월요일이었다. 오늘은 꼭 하고 말겠다는 더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오전에는 운동에 집 정리를 끝내고 나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를 보며 신문지를 깔아 두었다. 혼자 있으니 어제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하다 보면 끝이 나겠지 하며 하나씩 생강을 들어서 몸에 찰싹 붙어 버린 껍질을 벗겨 내었다. 2회분의 드라마가 끝나고 어둠이 내려오려 하는 5시가 다 되어갈 즈음 손질이 끝났다. 거의 4시간을 들였다.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내일을 기약했다.     

“사사삭 사사삭”

나무 도마에 오른 고운 얼굴을 한 생강이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오후 2시부터 생강을 썰기 시작했다. 칼을 든 손은 어느 때보다 빨리 움직인다. 내가 이리도 민첩한 사람이었나 할 만큼이다. 혹시 손이 베일라 손끝을 오므리고 칼이 향하는 방향으로 눈이 따라간다. 딴생각을 하면 순식간에 다치기 마련이다. 생강과 칼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맞춰 온 정신을 집중했다. 50여 분을 달리니 끝이 보인다. 그릇에 한가득 노란 개나리꽃이 핀 것처럼 생강 산을 이뤘다.      


처음에는 대충 할 마음이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마무리하고 싶었다. 주변이 환해질 만큼 노란빛을 내는 생강 조각들을 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일 년 동안 먹을 것인데 억지로 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정성을 들일 정도의 에너지는 없다. 그동안 해오던 대로만 하기로 했다. 집에 남아있던 꿀을 붓고는 다시 갈색 설탕을 생강의 분량보다 조금 적게 넣어서 버무렸다. 단맛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이 작용한 탓이다. 각기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유리통에 생강청을 담았다.      


아무도 모르지만 혼자 지쳐갈 무렵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왜 난 자꾸 내가 만들어 먹는 일이 이리도 매달리는가 싶다. 그러다가 지금의 수고로움은 사계절 동안의 기쁨에 비하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피곤하거나 몸살 기운이 있을 때, 피로가 몰려오는 날이면 언제나 생강차를 곁에 둔다. 작은 주전자에 생강청 서너 숟가락을 듬뿍 넣은 다음 팔팔 끓여서 마신다. 이것을 한두 번 반복하면 몸에 온기가 돌면서 기운이 난다. 몸에 익은 생강에 대한 기억이 매해 생강청을 만들게 하는 힘이 된다.


생강을 사다 둔 것은 잘한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곳에 두면 자꾸 인식하게 되고 결국에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생강 4 봉지가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따가운 시선이 가슴에 와닿을 무렵이었다. 생강청 만들기는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갔지만 목적지에는 도착했다. 완성된 그것을 옆에 두고 보니 갈색 설탕을 써서 색깔이 별로다. 물에 놓고 끓이면 그래도 생강의 진한 향은 머물러 있을 테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12월만 보내면 맛 든 생강차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 기다리고 목적의식을 잊지 않고 가다 보면 길을 만난다. 생강차를 만들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겨울 일의 최우선을 마무리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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