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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09. 2021

동상이미(同床異味) 동그랑땡

 

다름을 알아가는 중이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와 다르다. 때로는 비슷하다 혹은 닮다 여기다가도 결정적인 지점에선 다름을 발견한다. 그것이 타인을 그리워하거나 거리를 두게 되는 근원적인 이유가 된다.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해 내어 알려주는 이에게는 신선함이 머문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나와 똑같지는 않아도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다. 마음을 담아 만든 음식은 통할 거라 믿었고 대부분은 그런대로 잘 흘러갔다. 나 혼자만의 바람이고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결국은 다른 이들이다. 동그랑땡 하나를 두고 이렇게까지 생각이 머문다.      

 

추석 이후로 처음이니 정확히는 3개월 만이다. 겨울의 저녁은 5시를 넘길 무렵이면 어스름이 지고 순식간에 깜깜한 밤으로 변한다. 그 무렵 저녁 반찬을 고민하다  몇 분 전에 사 온 색이 맑은 주황색 당근에 끌렸다. 옆에는 제법 통통한 표고버섯이 있고 싱싱한 대파도 눈에 들어온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동그랑땡이 떠올랐다. 마늘은 까기가 귀찮았고 양파와 당근, 대파, 표고버섯을 다져서 넣기로 했다.      

며칠 전 칼이 안 들어 칼갈이에 놓고 몇 번 오갔더니 아주 가볍게 썰린다. 눈은 칼과 당근에 집중하고 왼손은 베이지 않도록 살짝 오므렸다. “타다닥 사사삭” 적당한 리듬을 만들어 내며 채 썰었다. 그다음은 당근을 다지는 작업에 열중한다. 도마에 놓인 그것을 일렬로 놓고 칼을 들어 가능한 아주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다진다. 이런 과정이 양파와 버섯으로 이어졌다. 대파는 적당히 송송 썰었고 여기에 매실청과 간장, 소금, 후추를 조금 넣고 계란 하나를 떨어뜨린 다음 부지런히 치대었다. 그리고는 굽는 과정에서 단단해지도록 우리밀가루를 조금 넣었다. 색깔로는 전체적으로 주황색 기운이 맛있어 보이지만 내 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양손을 오가며 적당한 모양을 만들고 팬에 노릇노릇 구웠다. 둥근 팬이 가득하도록 부쳐내고 나서 한 번을 다시 돌아가니 가득했던 그릇이 비워졌다. 여러 찬이 식탁을 채운 것도 좋지만 맘에 드는 한 가지가 다른 것들을 압도해 버릴 때가 많다. 동그랑땡이 외면당했던 일은 없으니 이것으로 저녁 준비는 끝이다.   

   

“아 맛있는 냄새, 엄마 오늘은 뭐예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아이는 벌써 무슨 음식이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하는 듯 얼굴이 밝아졌다. 학교와 학원을 끝내는 시간이기에 당연히 허기진 배를 달래줄 무엇이 필요한 시간이다. 아이에게 7시와 8시 사이 하루를 달래주는 건 맛있는 밥밖에 없다. 부엌으로 들어와 동그랑땡을 발견하는 살짝살짝 미소를 짓는다. 젓가락을 들고 하나 맛을 본다. 

“아 맛있다.”

내가 가장 기다리던 반응이다. 우리는 역시 잘 통했다. 종종 만나는 일이지만 매번 기분이 좋다. 밥을 대충 먹을까 하다가도 이런 기억들이 나를 일으켜 세워 다시 도마에 무언가를 놓고 음식을 만들게 한다. 아이들은 김장김치와 나물, 고추 멸치볶음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오로지 동그랑땡뿐이다.      


그렇게 저녁은 즐겁게 지나갔다. 아침이 돌아왔다. 다시 이것을 올렸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큰아이는 김을 찾고, 막내는 아예 젓가락을 들지 않는다. 볶음 고추장에 비벼 먹고 싶다고 했다. 

“왜? 어제 맛있게 먹었잖아?”

“엄마, 어제는 몰랐는데 당근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

내가 감추고 싶던 비밀이 밤사이에 드러났다. 종종 편식이 심하다는 생각에 가능한 알아채지 못하도록 감춘 상태에서라도 채소를 먹이고 싶다. 다 큰아이들에게 이런 방법이 잘 통하기는 만무했다. 가끔 떡갈비나 동그랑땡 등 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에 적용하려 하는데 어제가 그랬다. 아이들의 열광에 모른다 생각했는데 다시 먹어보니 알게 되었나 보다. 뻔히 드러날 일이었지만 아이의 말에 나도 몰래 웃음이 나왔다.    

  

삼시세끼는 몸을 위한 꼭 필요한 것이라 여긴다.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여러 미디어에선 여러 종류의 영양제가  건강을 책임져줄 것 같은 홍보 활동이 폭발적이다. 이런 것들을 뒤로하고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나는 것들을 고루 먹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것에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을 유지하는 식사를 바란다. 동그랑땡은 채소를 부담 없이 먹도록 하기 위한 궁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저녁의 허기진 속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지만, 시간은 생각의 회로를 가동했나 보다.      


무청으로 만든 시래기 멸치조림에 푹 빠져 지낸 지 이틀이 지났다. 아이들은 한 번도 먹어보려 하지 않는 이것이 내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찬이다. 아이들과 내가 음식을 대하는 일에 시간이 갈수록 비슷해 보일 뿐 확연히 다름을 알아간다. 자연의 것들을 가까이해야 건강하다는 믿음은 아직은 아이들에게는 먼 얘기인 듯하다. 어릴 적 부모님이 밭에서 금방 뽑아온 배추와 무청을 살짝 데쳐내어 쌈장을 찍어 먹으며 “속 편하게 이처럼 맛있는 건 없다”라고 하던 얘기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리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나처럼 어렴풋이라도 알게 될까? 영영 나와 다른 맛의 평행선을 그을지도 모른다. 동상이미(同床異味)는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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