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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12. 2021

유자청 익어가는 겨울

    

신비한 향이 은은히 흐르다 사라졌다. 다용도실에 양파 하나를 가지러 간 길이었다.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불을 켜고 보니 잊고 있던 검정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지 싶어 열어보았더니 유자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잊고 있었다. 언니가 완도에서 따다 주었는데 받고서는 내일 해야지 생각하다 뒤로 미뤘다. 하루 이틀이 지나니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이 저녁에 우연히 향기를 느끼지 못했으면 또 미뤄지거나 아니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처음 받을 때는 정말 귀한 것을 얻은 듯 기뻤다. 농약 한 번 안치고 자연에서 얻은 것이었다. 뾰족뾰족 가시 있는 가지에 오랜 세월을 보낸 만큼 하늘 높이 솟은 유자나무에서 수확하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들었다. 이런 까닭에 다 베어내고 한두 개 남았는데 올해는 그래도 몇 개 달렸다며 차를 담그라고 했다. 소쿠리에 비워보니 가득이다. 시간이 흐른 탓에 두세 개가 곰팡이가 피어 썩었고 나머지는 상태가 괜찮다. 귀한 보물을 얻은 것 같은 고마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순간에 바로 해야 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마음도 식었다.    

  

지금이라도 빨리해야겠다 싶어서 흐르는 물에 깨끗이 서너 번 씻었다. 소쿠리에 물이 빠지면 썰어야지 하다가 밤이 깊어진다. 9시를 넘기니 시간과 다시 타협하고 싶다. 내일을 생각했다. 종일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는 하룻밤을 보냈다. 토요일은 휴일이지만 언제나 정신이 없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시장을 다녀오고, 다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오후가 되니 말라가는 유자가 자꾸 내게 손짓하며 자기를 봐 달라고 하는 것 같다. 이제 돌아설 곳이 없다.      


처음 가졌던 마음을 꺼내 보기로 했다. 빨리 끝내고 싶은 조급함 대신 겨울이라고 하기엔 포근하지만, 가을이라고 하기엔 싸늘해진 계절의 향기를 느끼며 여유 있게 유자를 대하기로 했다. 어느 해에 추운 무릎을 따듯하게 해 주었던 얇은 담요를 꺼내어 거실 카펫 위에 깔았다. 와인색이 은은히 감도는 그것이 분위기를 더한다. 나무 도마를 놓고 유자를 4등분으로 썰었다. 유자에는 유독 씨가 많다. 가을에 수확하는 된장 콩처럼 은은한 초록과 베이지색이 감돌며 통통 튀어나온다. 손이 바빠질수록 접시에 씨가 쌓였다.     

처음에는 씨를 그냥 버릴 참이었다. 유자를 썰다 보니 다른 것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독특한 향에 마음을 두게 되었다. 유자 향도 좋지만 씨에도 그것이 가득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 이틀이라도 집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 씨를 방향제로 쓰기로 하고 접시에 소북이 모아놓았다.

“엄마 이 향기 뭐야? 아 유자구나. 근데 엄마, 유자 색깔이 개나리 같아.”

막내 아이가 옆으로 와서 종알대더니 한마디 한다. 유자가 봄을 연상시키는 개나리라는 말에 “아 그거구나”하는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만든 유자차는 일이 주를 보내면 먹을 수 있다. 추운 겨울보다도 꽃샘추위가 오는 봄날에 꺼내면 깊은 맛이 더 좋다. 겨울은 누군가에게는 쉼을 선물하지만 한편으로는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었다.      


생강청을 만들던 날에는 손이 너무 바삐 움직였다. 유자에게는 정성을 다하기로 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나만의 속도로 하나하나 얇게 썰었다. 많은 양이 아니었기에 부담이 없다. 이 순간을 느껴보려는 의지가 더해지니 유자를 손질하는 과정은 나만 아는 즐거움을 전했다. 손끝에는 혹독한 겨울의 차가운 공기인 듯한 쓴맛에, 따뜻한 봄이 온다는 은은한 단맛이 배어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주 조금 입에 갔다 대니 역시 너무 쓰다. 그냥 먹기는 무리다. 여기에 설탕이 더해지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유자청이 완성되어 한잔의 차로 태어난다.    

 

유자가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쌓여간다. 마트에 가면 유자차를 쉽게 살 수 있다. 대부분 사 먹지만 가끔 이렇게 청을 담그면 파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맛의 우열을 가리기 전에 이 시간이 특별하다. 다시 못 올 하루 중 큰 추억이 더해졌다. 유자는 한겨울 하얗게 쌓인 눈밭에서도 피어나는 복수초를 닮았다. 노랑의 따뜻함이 겨울을 녹여줄 듯하다. 향은 눈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계절을 잘 보내야 한다는 응원 같다.    

하얀 설탕을 유자 위에 뿌린 다음 비닐장갑을 끼고 버무렸다. 손은 설탕이 녹아가는 만큼 끈적끈적하고 무겁다. 유리병 세 개에 담았다. 감기 기운에 몸이 지쳐있거나 얼음처럼 차가운 추운 날 손발을 녹여줄 차가 완성되었다. 색이 곱다. 내가 손을 더해주니 빨강머리 삐삐처럼 주근깨 가득했던 귀여운 유자가 뽀얀 얼굴을 자랑한다. 섬의 칼바람에 난 생채기도 괜찮다. 오히려 말끔하지 않아서 더 마음이 간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손과 발을 움직이면 뭔가가 새롭게 생겨나지. 몸이 힘들어야 음식도 생활도 이어지는 거야.”

엄마는 맛있다고 먹는 내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열심히 움직였으니 알아달라는 적당히 부드러운 외침이었다. 알면서도 모른척했고, “알았어”하고 지나버렸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입장이고 보니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유자는 그냥 두면 얼마간은 향기로움으로 나를 기쁘게 해 주겠지만 그것으로 끝날 운명이었다. 내 손을 거치니 해가 바뀌어도 봄과 여름까지는 내 곁에 있을 듯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말을 종종 한다. 유자청을 만들며 유자와 함께하는 이때를 잘 보내고 싶었다. 아주 조금만 마음을 두니 짧은 순간이 평화를 주었다. 벌써 유자청이 하루를 보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삶은 만들어진다”는 누군가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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