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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15. 2021

겨울날 선물


오랜만에 모두가 모였다. 겨울이라고 하기엔 햇살이 따사로웠다. 점심을 먹고 한적한 산사를 거닐었다. 산 깊은 곳이라 해가 들어가고 없다. 그늘진 경내는 고요했고 겨울이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는 키 큰 감나무 다홍빛 감들이 물방울무늬처럼 보인다. 산 중의 찬 기운은 감의 빛깔을 더 곱게 만드는 힘이 있는지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해지는 감나무에 빠져 그 방향으로 함께 걸었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눴다. 아주 소소한 이야기지만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두고 천천히 걸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오가는 이는 한두 명이다. 이들마저도 발소리 없이 조용히 경내에 들어섰다. 간혹 우리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에서 삼십 여분을 보내고 카페로 갔다. 빵이 맛있다고 요즘 이곳을 모르면 안 된다며 모임의 큰 언니가 우리를 이끌었다.      


카페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을 담고 있었다. 천정이 높아 안정감을 주었고, 정면에는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다. 주인의 취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고고학 관련 책과 발굴조사서가 보인다. 주변에서 발굴된 기와 조각들도 전시되어 있다. 카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빵과 케이크가 중앙 큰 테이블 위에 놓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앙증맞은 텐트 안에서 사람들과 부대낌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각자의 차가 작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언제나 그러하듯 살아가는 비슷한 이야기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누군가 처음 입을 열었고 그다음 쉬지 않고 이어진다. 난 안쪽 중앙에 자리 잡았다. 함께 온 이의 가방인데 뭔가 사각형의 두꺼운 것이 있고 묵직한 느낌이다. 

“이거 뭐야? 아까부터 궁금하더라고. 우리 오늘 읽을 책인가?”

“언니 줘 보세요. 그러잖아도 이거 주려고 갖고 온 건데.”

말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들어 건네려는데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가방 주인은 그것을 받아 들자마자 한 권씩 건넨다. 두꺼운 양장본 책이었다. 『삶의 모든 색』이란 제목이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엽서를 꺼내어 이름대로 전했다. 오랜만에 책을 선물 받았다. 손글씨로 쓴 엽서까지 함께하니 가슴이 찡해 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뻔했다. 다들 즐겁게 얘기하는데 내 감정을 앞세우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꾹 참았다. 예상에 없던 선물을 받은 기쁨 이전에 이것을 전한 그의 마음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졌다. 시월의 어느 춥던 날 그의 아버지가 세상과 이별했다. 갑작스럽게 병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 병원에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린 적이 있었기에 그 마음이 내일처럼 다가왔다. 그는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던 우리들을 향한 고마움을 그렇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슬픔이란 단어를 꺼내놓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이런 것까지 준비한 그의 바지런함에 놀랐다.   

  

고맙다는 말과 언제 이런 걸 준비했느냐는 미안함이 더해진 말밖에는 더할 게 없었다. 책을 살짝 한 장 한 장 걷어보고는 집에서 읽어야겠다고 한편에 두었다. 또 다른 친구는 가랑코에 화분을 들고 왔다. 꽃 선물은 절로 미소 짓게 했다. 꽃을 좋아해서 남편에게 꽃바구니를 사달라 해도 별 반응이 없다. 종종 직접 나서 꽃을 사다 꽂을 뿐이었다. 가끔 동생이 집에 올 때는 그 계절의 꽃들을 한 다발씩 사 오는 게 전부였다. 책과 꽃이 나를 가슴 벅차게 했다. 만남을 위해서 준비한 그들의 마음씀이 감동이었다.      


집에 와서 책을 읽었다. 삶의 시선이 그림 에세이로 담겼다. 살아가는 단계별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모습들이 짧은 글에 응집되어 나타났다. 한 줄의 글이기에 책장을 빨리 넘길 것 같지만 여운이 가득 남아 쉽사리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찬찬히 읽다 보니 한 사람의 일생이 그려졌다. 그곳에 내 아버지도 있고, 얼마 전 곁을 떠난 친구의 아빠도 있지 않을까 싶다. 민트색 봉투에 담긴 편지를 꺼내 읽었다. 벽돌 지붕과 뭉게구름 아래 일렁이는 바닷물결, 초여름의 어느 집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려낸 엽서그림에 멈추게 되었다. 잔잔한 붓 터치에 생동감 있는 느낌은 어느 대가의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뒤를 보니 모네의 작품이었다. 보스턴 미술관에서 발행된 그림엽서다. 아끼던 것을 꺼내놓은 그의 마음이 어떤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꽃은 초록 잎들만 무성한 거실 화분 사이에 분홍빛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저녁을 준비하고 정리한 후에 식탁에 앉았다. 책을 한 번 바라보고 엽서를 찬찬히 읽으며 시선은 몇 번 꽃으로 향했다. 내 주위에 있는 이들이 지금 나를 만들어 가며, 내 삶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머물렀다. 중년에 접어들면서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다. 꿈속을 걷기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것을 그리고, 행동하는 하루를 바랐다. 그중 하나가 책 읽기였다. 책 속에 담긴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사람들과 나누며 함께하고 싶었다. ‘오월 동화’라는 이름의 이날의 모임 역시 그런 출발이었다. 4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5월 즈음에 구청 글쓰기 강의에서 만난 이들이 그림책을 함께 공부해 보자며 시작되었고, 그중에서 마음에 맞는 네 명이 함께해온 시간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 달에 한 번 만났다. 각자가 준비해 간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나누었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일상을 나누었다. 모임에선 서로의 다른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 흥미롭고 진지하면서도 절제되어 있고, 배려하는 시간이 좋았다. 타인의 이야기 대신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늘어놓았다. 지금은 누군가를 밖에서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지난해를 보내고부터는 자연스럽게 관계들이 하나둘 정리되어 간다. 내가 먼저 만남을 제안하지도 않고, 연락해 오는 이도 드문드문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지금이 좋다. 오월의 동화 친구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듯하다. 다양한 삶과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이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때로는 휴식을 얻는다. 이것들이 조금씩 모여 나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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