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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16. 2021

냉이사과 샌드위치
일상이 특별해지는 순간

      

음식을 그려보는 일이 재미있다. 다른 일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지만 먹는 일에서는 망설임이 없다. 지난 토요일에 도서관에서 책 몇 권을 빌렸다. 요리는 언제나 내 관심사이기에 서고를 뒤적이다 프렌치토스트만을 다룬 책에 마음이 끌렸다. 혼자 있는 평일의 점심에서 그리 힘을 쓰지 않으면서도 기분 전환을 위해서 식빵 한 조각에 여러 가지 변화를 주는 게 재미있다.    

 

집에서 책을 뒤적이다 시금치와 사과가 들어간 토스트를 설명하는 페이지를 살짝 보았다. 월요일에 해 먹어야지 하고 마음에 두었다. 저녁에는 냉이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로컬푸드에는 벌써 냉이가 나온 지 며칠이나 지났다. 땅의 기운이 느껴질 만큼 굵고 단단한 뿌리를 자랑하는 제법 잘 자란 냉이 한 봉지를 사 왔다. 국을 끓이고도 많이 남아 아침에는 나물로 상에 올렸다.      


운동을 다녀오고부터 시간은 휘리릭 흐른다. 오랜만에 아이들 방과 집을 정리하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침부터 아메리카노를 오가다 계속 훌쩍인 까닭에 그리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먹다 남은 식빵 한 조각이 보인다. 그것을 이용해 점심을 만들기로 했다. 일찍 생각에 둔 건 시금치였지만 다시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가능한 편하게 나를 만족시켜줄 것을 고민했다.   

냉장고에는 냉이 나물이 있다. 시금치 대신 냉이를 택했다. 생치즈를 두 조각 자르고 그 위에 냉이 나물을 적당히 올렸다. 샐러드에 놓고 남은 사과를 슬라이스 해서 올렸다. 그것만으로는 허전해서 사과 조림도 조금 더했다. 냉이 향에 참기름의 고소함까지 더해진다. 갓 구운 식빵 한 조각이 순간 풍성해졌다. 큰 둥근 접시에 올린 다음 오랜만에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냉이는 다른 나물과는 달리 질기다. 적당한 크기로 편하게 먹기 위해선 필요한 도구들이었다.     


빵과 치즈, 냉이, 아삭한 사과까지  썩 괜찮은 조합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낸 것 같은 혼자만의 작은 기쁨을 느꼈다. 식빵은 밀가루를 멀리하고픈 마음과 달리 언제나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빵에 올리는 대로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에 내 주변에 있는 그것들과 함께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과일과 야채가 함께해야 안심이다. 빵의 양을 줄일 수 있고 텁텁함을 달아나게 한다. 더불어 신선한 맛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한 그릇을 만날 수 있다.     


냉이는 봄나물로 통했다. 이상기후의 영향인지 봄보다는 겨울에 먹어야 제맛인듯하다.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상태로 보아선 노지 것이 아닌가 싶다. 냉이는 시원하면서도 산뜻하며 따듯한 향기가 있어 먹는 순간 기분을 전환시켜준다. 식탁에 다른 여러 가지가 오를지라도 이것과 함께 하면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 튀지 않지만 먹는 사람은 아는 혼자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냉이 사과 오픈 샌드위치와 함께하니 잠깐의 즐거움이 머물렀다. 상상했던 맛을 실제로 경험하는 기분은 사뭇 이색적이고 가슴 뛰게 한다. 빵 한 조각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자칫 과하다 여길 수 있지만 말이다. 세상에 내가 생각했던 것을 오롯이 펼쳐 보이고, 다른 이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순수하게 느껴보고 평가한다. 좋고 나쁨이라는 성적표가 매겨지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머릿속의 것들과 실재하는 것 사이의 간격이 얼마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생생해서 좋다.     


어설픈 사진도 찍어 보았다. 지금 내가 만나는 그것의 색감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할지라도 어렴풋한 분위기를 기록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색연필을 들어 간단한 스케치를 더 하고 싶다. 그건 아마 영영 내가 도전하기 어려운 범주의 것이 될 것 같지만 말이다.      

한 조각의 샌드위치는 한 주를 시작하는 그날 오전의 내 마음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뤘던 아이 방에 조금 머물며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바구니에 모아두었던 인형들을 꺼내어 세상 공기 속에서 함께 머물도록 피아노 위에 올렸다. 큰아이 방에선 얼마 전에 산 마티스의 태피스트리를 보며 예술가의 작품이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켜주는지를 생각했다. 그 후에 찾아온 나만의 점심은 겨울이지만 따듯한 한낮의 공기 속에서 일상은 반복이 아닌 끊임없는 새로운 시간임을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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