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Jan 10. 2022

문 앞에 놓인 치킨이 익숙해질 무렵


치킨을 시켰다. 일요일 저녁은 무언가를 하는 일도 귀찮다.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벼르던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전화기를 들고 동네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하는 게 당연하지만 휴대전화를 들었다.      


코로나 전에는 배달앱을 사용하지 않았다. 음식을 시켜 먹는 일은 드문 일이었고 간혹 있다 하더라도 치킨 정도였다. 그러다 길어진 코로나는 밖으로 나가는 일을 주저하게 했다.  지난여름 무렵 배달 앱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들어서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하는 일도 귀찮아지고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끝나는 앱은 편리하다는 명목으로 점점 늘어나더니 이젠 익숙하다.     


처음에는 배달을 온 이와 얼굴을 맞대어 주문한 것들을 찾아왔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는 그마저 사라졌다. 주문할 때부터 문 앞에 놓고 벨을 눌러 주세요라고 미리 요청한다. 일절 배달 온 이들과 만나는 일이 없다.      


당연한 일이 되었고, 편하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이와 어색한 만남과 혹시나 하는 위험요소로부터 자유롭게 됐다는 것을 즐겼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밖으로 나가는 외식 대신 주문해서 한 끼 식사를 대신했다. 당연하다고 여겼기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은 치킨을 기다린다. 30분이 지났을 무렵 벨 소리가 울린다. 바로 나가면 혹시나 마주칠 수 있기에 한 박자 쉬고 나갔더니 덩그러니 치킨이 담긴 비닐만 문 앞에 놓여있다. 그것을 들고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사람을 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그러면서 어딘지 모르는 씁쓸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물론 아는 사람과의 만남과 배달 물건을 직접 나가서 받는 상황은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기 어려운 일이다.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니 그냥 물건만 받는 것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는 일일 수도 있다. 음식을 시켜 먹는 일의 중심축은 편리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기에 당연한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치킨을 받아 들고 그것을 펼쳐놓는 시간까지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불과 한 시간 반 전에 아는 이를 한 달여 만에 만나서 오랜 대화를 나누고 온 여운이 남아서 일까? 과거보다 확실히 사람을 대하는 일에 일종의 경계심이 생긴 건 분명하다. 그것은 대상을 알고 모름이 아니라 그저 만남을 주저하게 되었다.      

아주 간헐적인 만남이 이어지는 중이다. 물리적 거리를 두고 사는 가족에서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친구까지 모두가 포함된다. 약속하는 일이 없으니 내 생활에 집중하게 되는 측면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수다가 고파질 때가 있다.      


이런 갈증 속에서 한편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커진다. 우선은 바이러스의 공포다. 어느 공간에서 기침 소리라도 나면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핀다. 마스크를 더 올리거나 가능한 일을 빨리 보고 집으로 향하려 한다. 나를 챙기는 일이면서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타인일지도 내게 혹시나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존재한다.     


치킨 배달기사 분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몇 년 전만 해도 얼굴을 마주하고 카드를 꺼내어 단말기에 결제되는 동안 기다리는 일은 당연했다. 영수증을 건네면서 서로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내 손안에 든 휴대전화로 결제하고 나면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오히려 어색한 상황으로 변해간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뉴스만 틀면 온갖 잔혹한 범죄가 기승이다. 그 내용은 자극적이라 듣는 것만으로도 거북하다. 이런 뉴스들을 계속해서 듣다 보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를 무심코 생각하게 한다. 모르는 사람은 가능한 거리를 두는 것도 이 중에 하나다.      


홀로 문 앞에 놓인 외로운 치킨을 들고 집안으로 들고 오면서 익숙해져 버린 비대면 생활에 순간 놀랐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상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혼자 있는 게 편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것이 진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구나 타인과 대화를 원하지만 바라는 만큼의 관계 맺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시도하는 일조차 멈춰버리고 혼자만의 시간 속에 머물게 되는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가 여러 이유로 코로나 시대에 생긴 칸막이 같은 게 늘어나는 것 같아 아쉽다. 나 역시 그것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처음이라는 셀렘, 귤 마멀레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