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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10. 2022

흐릿한 일상을 맑게,
양배추 사과 샐러드


오후를 잘 보내게 하는 소리가 있다. 점심때 오랜만에 혼자 만들어 먹은 양배추 사과 샐러드의 "아삭, 아사삭"한 경쾌한 노래가 그 출발이다. 바삐 몸을 움직이다 보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맑아진다. 심란한 생각이 마음에 들어와 몸과 하나가 되어 똘똘 뭉쳐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불안이라는 큰 가지 아래 작은 가지를 만들어 가는 걱정과 공포, 두려움 등이 싹을 틔우려 한다. 이럴 때일수록 평정을 찾아야 하지만 내겐 참 어려운 문제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예상에도 없던 해법이 내 앞에 나타난다.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 일도 그랬다.    

  

큰 아이가 토요일에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했다. 우리 부부는 3차까지 맞았지만 별다른 이상 반응이 없었다. 아이 역시 1차도 무탈하게 지났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여겼다. 접종 당일은 그저 좀 지친다 해서 아이에게 쉬라고 했다. 하룻밤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 여겼다. 일요일 아침에 아이 방에 가서 이마에 손을 대 보니 따끈하다. 체온계로 재어보니 38.5도. 아이를 깨워 타이레놀을 먹였다. 열이 오른 까닭에 아이의 눈은 빨개지고 몸은 힘들어 보였다.     


"엄마 나 새벽에는 더 아팠어. 지금은 그래도 좀 괜찮은 듯해. "

아이의 말에 가슴이 철렁한다. 아이가 아파서 끙끙대는 동안 쿨쿨 잠을 잔 내가 밉다. 아이 혼자 겪었을지도 모르는 힘든 시간을 헤아려보니 미안해지면서 속상했다. 이마에 물수건을 대어주고 보리차도 먹였다. 그리고 시간 간격을 주고 체온을 체크하며 아이 방을 오갔다. 다행히 약 기운에 좀 있으니 열은 내렸다. 이런 상황이 종일 계속되었다. 하루를 보내고 이틀째, 아이는 기운이 나는듯했다. 다행히 저녁에 잠깐 열이 올랐을 뿐이다. 중학생인 아이는 그래도 컸다고 잘 버틴다. 아이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지치면 잠을 청했다.     

이틀 동안 내 마음이 자꾸 파도를 쳤다.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다가도 다시 아이 얼굴을 보면 작은 파도가 일렁일 준비를 했다. 식탁에 앉아 냉장고에 붙여둔 접종 후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었다. 아이의 상황은 많은 사람이 겪는 보통의 접종 이상증세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앞에 닥치니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아이는 죽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했다. 


“엄마,  괜찮아지겠지?”

“그래, 대부분 2~3일이면 좋아진다고 하던데.”

종종 물음을 던지는 아이에게 매번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의 확신에 찬 답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는 걸 종종 경험했다. 시험문제의 답처럼 미리 정해진 것이 있다 하더라도 어려운 시기에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믿어보는 것은 때로 특별한 효과를 발휘한다. 여기에 시간은 애쓰지 않아도 현명한 해법을 제시해 준다. 이번에도 그랬다.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는 아이 얼굴이 밝아졌다. 묻지 않아도 회복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어느 작가는 사람들은 기쁨보다는 슬픔을 겪으며 삶의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거부하고 싶지만 막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접종 후 아이가 아픈 정도를 가지고 얘기하는 게 그리 어울리지는 않는 듯하지만 말이다. 시간을 견디어 내는 것. 그것이 때로는 적절한 방법일 때가 많다. 이런 시간은 종종 나를 잊게 한다. 나를 생각하며 지내는 게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땐 모든 게 멈춰버린다. 이틀 동안 나도 그랬다. 아이가 커서 그리 손이 가는 게 없지만, 마음이 한 곳으로 향하는 까닭에 의욕을 갖고 뭔가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새벽에도 한 시간 간격으로 아이를 살펴보니 열도 오르지 않고 안정되는 모양새다. 몸이 긴장하다 보니 피로감이 밀려왔다. 

“당신, 왜 그리 힘이 없어?”

“응, 요즘 글도 안 쓰고 그냥 하는 게 없네.”

“좀 쉬면서 해. 꼭 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 없잖아.”

남편과 아침 출근 무렵에 이런 얘기를 잠깐 나눴다. 아이가 아픈 것 때문이라고 분명히 얘기하는 대신에 지금의 상황과 내게 놓인 고민을 한 곳에 버무리고 늘어놓았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욕실을 청소하고, 빨래를 널고, 아이들 점심을 차려주면서 알았다. 난 매일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그렇지 않다는 정도의 차이뿐이었다.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찾았다. 그건 가벼운 식사, 내가 원하는 것을 먹는 일이었다. 샐러드를 찾았다. 최근 들어 두 번이나 봤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의 대사가 스쳤다.

"겨울 양배추는 생식으로 먹는 게 최고야."

혼자 샐러드를 만들고 식빵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를 먹는 주인공의 마음이 살짝 되어본다. 엄마가 떠난 빈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일상을 이어가고, 엄마를 다시 바라보며 또한 자신을 만난다. 혜원이 양손으로 샌드위치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며 먹는 장면은  복잡한 듯하면서도 삶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나도 일상으로 잘 돌아가고 싶었다.


포크를 들고 아삭 거리는 양배추와 달콤한 사과의 맛에 진심으로 빠져본다. 천천히 잘 씹으며 그 맛을 그려본다. 샐러드는 가끔 흐릿한 하루를 맑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이 음식의 기본은 본 재료의 맛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 포크를 들어 사과와 양배추를 콕 찍어 먹으니 싱싱한 그것이 입안에서 어울려 큰 에너지를 전한다. 사과의 달콤함이 무엇보다 진하다. 아주 단 맛인데 부드럽고 기분 좋다. 초콜릿이나 설탕의 그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올리브유와 화이트 와인 식초에 들깻가루가 더해진 소스의 새콤달콤함과 고소함이 시차를 두고 다가온다. 토마토 마리네이드 몇 개를 올렸더니 붉은빛이 샐러드의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일상을 풍부하게 하는 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오늘은 양배추 사과 샐러드였다. 어느 심리학자가 건넸던 말이 생각난다.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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