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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8. 2022

할머니의 봄날 오후

함께여서  아름다운 날

    

오후 햇볕은 따뜻했다. 마음과 몸을 꽁꽁 싸매 둔 채로 집안에만 있던 이들을 설레게 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문을 열고 나와 몇 발자국만 가면 햇볕이 들고 바람이 멈춰서 소리 없이 지나가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다.  사전 투표를 마치고 간단히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건널목을 지나 공원을 가로질러  가려는데 한편에 알록달록 색깔들이 먼저 들어왔다. 저 멀리 나지막한 의자에 오순도순 어르신들이 앉아 있었다. 주변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들이 오후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누군가 갖다 놓았는지 모르는 예닐곱 개의 의자는 꽉 찼다. 어느 할머니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다. 마음처럼 말을 듣지 않는 몸을 기대게 하는 보행보조차도 앞에 멈춰있다. 공원의 한편, 볕이 가장 잘 드는 그곳이 사랑방으로 변했다. 코로나로 아파트에 있는 경로당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동네 소식이 궁금하거나 심심할 때 찾아가던 그곳에 가기 어려우니 밖으로 나왔나 보다. 오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와, 주거니 받거니 수다 떠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한 할머니는 눈이 부신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러면서도 자리를 뜰 생각은 없는 눈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여기저기서 들리는 얘기들이 즐겁다. 시끄러울 것 같은 자동차 소리도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고요하던 가슴을 깨운다. 혼자가 아니다. 속속들이 들어가 보면 모두 타인이지만 함께하는 동안은 외롭지 않다. 한 할머니가 무슨 얘기를 꺼내면 이곳저곳에서 반응이 나온다.      

할머니의 옷들도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강렬한 색이 촌스럽다 여기다가도 어느 순간 어색하지 않다. 내가 어느 할머니의 복숭아빛에 반짝이가 들어간 스웨터를 입는다면 정말 이상하겠지만.  할머니들이 빨강, 노랑, 초록, 분홍의 형형색색이 어울리는 건 삶이란 오랜 여행을 이어가고 있는 까닭인 듯하다. 할머니들은 어려운 세월을 보내며 여러 일을 겪고, 넘기면서 세상을 품어줄 마음 그릇이 커졌다. 그래서 과하다 싶은 세상의 색들에도 어울려 조화로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잠시 멈칫하고 할머니들을 바라보다 바삐 걸음을 움직였다. 문득 20년 전 어느 여름날 한강에서 만났던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한창 다이어트에 집중했던 난 아침 6시 반이면 한강 변으로 나가 뛰었다. 여름날 아침은 어느 때보다 빨리 돌아왔고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강 주변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무슨 얘기를 나누는 이도 있고, 물끄러미 강물만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을 외롭다고 생각했다. 누구인지 알 길 없는 어르신들을 향한 내 시선은 안타까움이었다. 주변은 대부분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살 것 같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더 나아가 분주한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가족들을 위해 잠깐 자리를 비켜준 게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도 이어졌다.


지금은 조금 다른 시선인 나를 발견한다. 공원에 모여있는 할머니를 스치고 나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본 듯했다. 공원에 나온 할머니도 한강 변에서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어르신들도 세상과 대화하기 위한 게 아닐까. 휴대전화와 텔레비전, 라디오 등 미디어의 홍수지만 이웃들의 입을 통해서 알고 싶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얼굴 표정과 손의 움직임, 어깨의 들썩거림으로 살아있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한다. 보통의 하루가 전하는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추운 계절은 사람을 집 안에 머물러 있게 한다.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다가도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공기는 현관문을 과감히 여는 걸 머뭇거리게 한다. 이에 반해 봄은 쉼 없이 손짓한다. 잠깐 스치는 바람에도 어느 아파트 옆 담장에 핀 개나리도 밖으로 나오라고 노래한다. 봄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는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햇살을 오롯이 느끼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모두가 경험하지는 않는다. 그런 시간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한편에 치우친  현실과 먼 그저 감성적인 시선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 다가올 따스한 봄의 소리를 들으며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 것 같은 그들이 이 계절에 행복했으면 좋겠다. 상황이 좋아져서,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봄이기에 허락된 부드러움과 따뜻한 공기와 바람, 햇살을 오래 기억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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