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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1. 2022

마음 달래줄 달래장

식치(食治)를 생각하며 


봄날은 밥상 고민이 많아진다. 몇 달 전 만들어 놓은 김장김치를 올리는 일은 아이들이 개학하는 3월부터는 어색하다. 다운점퍼는 부담스러워 추워도 셔츠와 니트를 껴입는 게 편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차리는 계절이 변화다.      


청국장이나 김치찌개보다는 겉절이나 깔끔한 감잣국이 좋다. 가볍고 기분 좋게, 신선한 자연의 맛을 찾는다. 사계절 비닐하우스에서 나물이 나오지만, 이 계절에는 달라 보인다. 추운 겨울 맨땅의 시린 기운을 잘 견디어 내었든, 비닐하우스에서 농부들의 정성 어린 손으로 길러진 것이든 봄이기에 특별하다.   

냉장고 속 보물, 달래장 

  

달래의 새로운 매력을 찾았다. 그동안은 봄기운이 돌 즈음이면 달래를 된장찌개나 전 등 여러 가지에 함께 넣어 먹었다. 달래장 역시 빼놓지 않고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달리 보인다. 달래를 씻고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간장과 매실청, 참기름, 깨소금을 넣으면 완성이다. 쉽게 요리가 끝나지만 쓰임은 특별하다. 대충 먹고 싶은 날에는 한없이 고마운 냉장고 속에 숨겨진 보물이다. 이것과 함께 따뜻한 밥만 있다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언제나 삼시 세 끼를 정석대로 챙기는 건 간단치 않다. 여기에 계절이라는 변수가 더해지면 더 복잡하다. 봄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처럼 나 역시 생활에 변화를 바라는 시기다. 이런 이유로 때로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정도로 의욕이 샘솟거나 정반대로 흘러간다. 요즘 내 시계의 방향은 후자에 속한다.     

매일 하던 일들이 귀찮고 싫다. 그러다 문득 내 삶을 돌아보고 그럴 때마다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은 반복되는 하루의 일들에서 불협화음을 만든다. 특별한 일이 생겨서도 아니다. 앙상한 나무에 새싹이 돋듯이 거듭나고 싶은 내가 부딪히며 갈등한다.      


이럴 때면 밥하는 일과 거리를 두고 싶다. 일요일 점심이었다. 이때 달래장이 생각났다. 아이는 계란 프라이에, 남편은 집에 있는 야채들을 볶은 후에 밥 위에 얹어 먹었다. 나도 밥을 조금 떠서 쓱쓱 비볐다.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하고 살짝 매운듯하면서도 신선한 향이 서서히 올라온다. 반찬을 여러 개 올릴 필요 없는 식탁이었다. 가라앉았던 기분도 밥을 먹고 나니 살짝 살아난다.   

  

이날처럼 힘든 날은 가능한 것만 하기로 했다. 잘 안 될 때도 많지만 기본만을 하는 것. 무엇이든 최소한으로 간단하게 하기다. 먹는 일도 당연하다. 가끔은 부족해 보이는 소박한 밥상이 좋다. 매일 비우는 일보다 채우는 것이 우선인 생활이다. 이럴 때면 절로 비우게 되니 좋다. 달래장으로 비빈 밥 한 그릇만 덜렁 있는 식탁에서 얻는 뜻밖의 소득이다.    

식치(食治)라는 말이 있다. 먹는 것으로 몸을 다스리는 일을 일컫지만 간단하지 않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식욕을 절제하는 일은 보통의 다짐으로는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몸을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에 차린 간단한 점심상은 부지불식간에 식치를 실천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몸을 위하는 일은 복잡함 보다는 간단한 식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에는 살랑이는 바람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싶다. 소식하고 생각을 단순화하는 것. 부엌에서 멀어지고 싶은 날에는 달래장에 밥상을 맡겨야겠다. 그러고 나서 산책하며 내 마음을 달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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