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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7. 2022

봄날 쑥 파운드케이크

빵을 향한 마음 따라가 보니 


     

빵을 구웠다. 며칠 전 사다 놓은 쑥으로 파운드케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습관처럼 노트북을 켜고 아침에 놓친 시사프로그램을 들으며 빵 만들기에 나섰다. 정신없는 아침 시간을 보내고 설거지를 끝낸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다시 혼자 바쁘다. 빵을 먹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건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로 가고 난 조용한 집안에서 술렁이는 마음을 두기 위해 빵을 택했다.     


쑥을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여기에 눈대중으로만 재료들을 한데 모았다. 설탕과 겨울에 만들어 놓은 귤 마멀레이드, 달걀을 깨뜨리고 녹인 버터를 함께 잘 휘저은 다음 중력분을 채 쳐서 넣고 베이킹파우더도 찻숟가락으로 조금 더했다. 반죽이 너무 뻑뻑한 것 같아 우유까지 동원했다. 이 모두가 더해진 반죽은 색이 곱다. 초록과 노랑에 하얀 밀가루가 더해지니 설레기 시작한다. 틀에 넣고 40분을 구웠다. 오븐에서 빵이 구워지는 동안 청소기를 돌렸다. 휴일 흔적을 지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한 주를 보내기 위한 준비다.     

빵 굽는 냄새가 집안에 퍼져나간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점심으로 빵에 커피를 곁들였다. 파운드케이크는 담백하면서도 적당히 달콤하다. 화려하지도 않다. 쑥 향이 은은히 머물다 간다. 대충이라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작은 걱정이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게 나왔다. 거칠고 투박한 겉모습만 봐서는 별로인 것 같지만 맛은 훌륭했다. 빵을 만들 때는 정확한 계량이 생명이라고 했는데 어찌어찌해도 이렇게 완성되니 누군지도 모를 대상에게 고맙다. 사각 유리 틀에 편평했던 반죽이 부풀어 올라 갈색으로 구워질 때면 흐뭇하고 즐겁다.


누구의 도움 없이 빵이 완성되어 가는 순간이 매력적이다. 한 달 전 봤던 영화 <줄리 앤 줄리아>가 떠오른다.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가 요리가 빠져들었던 것도 이런 기분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는 요리하는 동안 가장 그 다운 모습을 보였다. 요리는 그를 숨 쉬게 했고 삶을 풍요롭게 했다. 그의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 가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뉴욕의 요리 블로거 줄리의 처음 복잡했던 마음 상태는 지금 나와 좀 비슷한 듯하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  한 장면

재료에 대한 색다른 접근은 그것에 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몰고 온다. 때로는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한두 번은 꼭 그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쑥이 그랬다. 쑥은 한겨울에 땅을 벗 삼아 숨죽이고 있다가 봄이 찾아올 무렵이면 얼굴을 내민다. 눈과 비, 세찬 바람까지 자연이 주는 힘든 시간을 견디었으니 그만큼 단단하다. 쑥은 쉼 없이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 옆 산책로에도 봄부터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종종 만날 수 있다.  쑥은 단단하니 쉽게 물러지지 않고,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다. 쑥이 지닌 특징들을 떠올리니 내가 닮고 싶은 모습들이 참 많다. 쑥의 생생한 봄기운이 빵 안에 가득 담겨 내게로 왔으면 좋겠다.  


난 무엇을 성취하는 순간의 나를 그리워한다. 나를 오롯이 받아주는 일에도 인색하다. 몸에 밴 습관은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오전까지 여러 집안일을 했음에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내게 다가오는 부족감은 글을 쓰게 하고 아침부터 빵을 만들게 했다. 하얀 밀가루가 덩어리가 되어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과정은 완성되었다는 분명한 결말을 보여준다. 아무리 잘 안되더라도 설익은 채로 그만두는 일은 없다. 끝까지 밀고 나가서 다 구워진 빵을 확인한다. 당연한 과정이지만  다른 일에는 적용하기 힘들 때가 많다. 시작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두거나 한두 번 하고 포기한다. 예외인 게 빵이다. 그러니 어떤 날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고 싶을 때 선뜻 빵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하루의 한 부분과 상태를 오롯이 기록하면서 다시 나를 본다.  어제도 오늘도 그냥 나인데 무엇을 기어코 하려는 내가 안쓰럽다. 그럼에도 쑥 파운드케이크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두려움을 갖기도 전에 몸이 앞서 나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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