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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4. 2022

단풍나무에서 배우다

단이의 특별한 봄 

        

봄날이다. 따뜻한 햇볕이 아파트 베란다에 가득 들어올 즈음이면 화분들이 놓인 그곳으로 달려간다. 매일 보는 나무들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모두를 초록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초록이면서 붉고, 어떤 건 연두에 가깝다. 다른 다육식물은 초록에서 검정이 더해진 느낌이다. 한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한 아이비 잎 몇 개는 누렇게 색이 변해 생명을 다해간다. 한 화분에 있으면서도 모두가 다르다. 내 기분에 따라 다르고, 태양이 있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 또한 구분된다. 그저 먼발치서 바라본다. 그러다 깜짝 선물처럼 새싹을 발견했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 봄이면 떨어졌던 잎들이 제자리에 다시 돋아나는 건 당연하다 싶다. 그럼에도 이것을 보고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특별한 새싹, 오랜 친구인 단풍나무 ‘단이’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단이와 함께 지낸 건 넉넉잡아 십일 년. 키가 5~6센티미터였던  단이는 그동안 세월이 더해져 내 어깨만큼 자랐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지내다 갑자기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낼 때였다.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일어나려는 순간 천정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도 꺼려질 만큼 어지럼증이 심했다. 막 승진해 일에 집중하던 시기에 찾아온 아픔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주 천천히 산책하며 몸을 회복하려 애썼다. 습관처럼 매일 아침이면 아파트 작은 숲을 걸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단풍나무가 있었다. 단풍나무 씨가 뿌리를 내려 작은 아기 나무가 가득했다. 그중에서 하나를 뽑아 집으로 가져왔고 작은 토분에 심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던 터라 회사를 정리하면서 살림을 합치게 되었다. 지방에 있는 남편 집으로 가는 한여름 이삿짐 차 안에서도 단이는 쌩쌩했다. 가끔 집에 놀러 오는 이들은 화분에서 단풍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고 놀랐다. 가을이면 예쁜 단풍을 자랑했고, 봄이면 어느 것보다 먼저 작은 싹으로 시작을 알렸다.      

세상을 향해 다시 얼굴을 내민 단풍나무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함께 했기에 절로 마음이 갔다. 단단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단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와 단이를 볼 때마다 뿌듯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었다. 천천히 자라다 어느 날 보면 몰라보게 큰 키를 자랑했다.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그저 단이를 바라보았다.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을 때도 있었고, 그저 가만히 앉아 멍한 상태로 나무를 바라봤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는 기분이었다. 소리 없는 대화였지만 편안하고 좋았다. 누구에게도 꺼내놓기 힘든 것들을 들어주는 내 편이었다. 혼자 눈물을 훔칠 때 단이에게 물을 주면서 마음을 달랬다. 내게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어떤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단이는 언제나 자리를 지켜주는 친구였다.   

   

그런 단이가 지난해부터 시름시름 앓았다. 군데군데 잎이 시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진딧물이 가지마다 들러붙어 농약을 쳐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가능한 독성이 약하다는 약을 골라 뿌려주었다.  이 시기에 남편의 건강 역시 이상 신호를 보냈다. 여름에는 병원에 입원했고 겨울에는 수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이들과 남편 챙기는 일에 온 정신이 가 있어 단이를 챙길 여유조차 없었다. 남편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될 즈음에 살펴보니 나무 대부분이 죽어있었다.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맞닥뜨리는데 식물도 당연하다 여기며 마음을 달랬다. 튼튼하던 가지는 온데간데없고 텅 빈 화분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 잘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가끔 습관처럼 한가닥 남겨둔 가지에 물을 줄 뿐이었다. 

 

그러던 단이에게서 싹이 났다. 마지막 줄기에서 작은 잎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 봄을 보내면 다시 제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내가 외면하고 있는 동안 견딤의 시간을 보냈나 보다. 나무는 여름과 가을 겨울을 지내며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위안삼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단이를 향한 내 시선은 나를 향한 것과 닮았음을 발견한다. 힘들거나 부족한 부분을 살피기보다는 애써 외면하거나 나를 향한 화살로 아프게 한다. 그저 모든 게 나를 이루는 것인데도 말이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에 다시 싹이 돋아났다고 반가워하다 다시 멈추어 돌아보았다. 나무는 매일 그 자리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저 내가 바싹 말라버린 잎과 생기가 사라진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 힘들다고 피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일을 생각한다. 여전히 어렵지만 나무를 통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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