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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2. 2022

단순하게 즐겁게, 콜라비 샌드위치

가까운 것들에 손 내밀기 

   

즐겁게 지내자. 하루를 보내며 중심에 두고 싶은 말이다. 이 짧은 문장에는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다. 우선은 고민하는 일을 줄여보자는 것이고 다른 의미는 내게 놓여 있는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내게 집중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는 지금 내가 사는 무대다. 그러니 오늘을 잘 보내는 일이 우선이다. 매일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 부담스럽다. 온 정신과 힘을 다할 수는 없지만 무엇 하나라도 기분 좋게 하는 일들은 가능하다. 기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정의 내리고 꾸역꾸역 할 때도 있지만 종종 내버려 두고 마음 가는 대로 해도 괜찮다. 내 앞에 놓인 것들을 보이는 그대로 보고 대처해가는 일, 지금 내게 필요하다.    

 

엄마, 언니, 오빠, 동생 온 가족이 내게 즐겁게 지내라고 말한다. 그건 아마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지 않아 보이기에 염려를 담은 당부며 응원 같다. 이들은 전화기를 들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 말로 마무리한다. 말의 힘은 상당한 것이어서 자꾸 듣다 보니 진짜 그래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순간 머릿속에 저장되어 절로 작동하게 되나 보다.     

즐거운 점심의 주인공 콜라비 샌드위치 


기쁘다, 좋다, 흐뭇하다, 유쾌하다, 아기자기하다, 재미있다 …. 이 단어들은 즐겁다를 대신할 수 있는 비슷한 말들이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일들을 떠올려 보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닐 때가 많다. 그저 순간순간 만났던 일상의 부분들이다. 다시 살며시 들어가 보면 내 마음이 쏠리는 방향으로 가보는 것. 이것이 아마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기 위한 기본인 듯하다. 항상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별생각 없이 지금 떠오르는 걸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먹는 일에 진심인 나는 조용한 점심을 즐겁게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혼자 남은 집안에는 해야 할 일들이 가득하지만 적당한 것이 좋다. 빨래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아침에 공원을 돌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사준 동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마셨다. 포털에서 뉴스를 검색하고 나서는 콜라비를 떠올렸다. 며칠 전부터 매일 먹는 야채다. 진한 빛나는 보라색의 옷을 입고, 두 갈래 초록 머리를 남겨둔 모습은 다부지고 귀엽다. 통통하면서도 심지가 굳을 것 같은 콜라비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시간을 두어도 쉽게 상하지 않을 만큼 어떤 상황에도 덜 흔들리는 강인함을 갖췄을 것 같다. 야채를 보면서 사람인 것 마냥 성정을 그려보는 건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말이다. 내가 없는 것들이 있을 것만 같아서 상상하다 보니, 다시 나를 바라보게 된다. 

콜라비 샐러드

콜라비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엄마가 종종 보내 주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피클을 만들어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엄마가 생채가 좋다는 얘기에 처음에는 무와 함께 채를 썰어서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다음에는 아주 얇게 썰어서 먹어보니 단단하지만 아삭한 단맛이 일품이었다. 샐러드를 만들면 순수한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콜라비 샐러드를 만들어 먹은 지 3일째다. 채 썬 콜라비에 식초와 올리브유를 넣으면 끝이다.     

복잡하지 않다는 건 절로 반복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아이들은 외면하지만, 남편은 그래도 젓가락이 몇 차례 오갔다. 식탁에서 비타민c가 많은 야채라고 나름 소리를 높이지만 다들 관심이 없다. 남은 것을 두고 점심에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했다. 식빵 두 조각을 굽고 치즈를 올리고 그 위에는 콜라비 샐러드와 아침에 먹다 남은 계란말이를 한 조각씩 넣었다. 왕방울 딸기도 썰어서 올렸다. 노랑, 하양, 빨간색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빵 한 조각을 포개어 입으로 가져가니 아삭한 소리와 함께 딸기의 새콤 달콤함, 계란의 고소함이 하나씩 다가온다.      


점심으로 샌드위치 두 조각을 먹었다. 서두르는 일 없이 천천히 원하는 대로 하니 편안하다. 있는 것들을 한데 모아서 빵에 올렸다.  콜라비의 새로운 발견이다. 샌드위치의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탁월하다고 하기엔 망설여진다. 먹기 전 맛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엔 부족하다. 대충 먹지 않고 매일 돌아오는 점심 식사에서 마음 가는 대로 해 보았다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콜라비

특별함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만큼의 어려움을 동반한다. 현실이라는 단단한 장벽은 실현 가능성을 줄인다. 종종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을 주문하기 하지만 선택의 문제다. 난 어느 순간부터 현재가 없는 미래에 대해선 물음표를 던지게 되었다. 가까운 곳에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 즐거움을 얻는 간단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마음을 단순하게 하고 이것이 생활로 이어진다면 담백한 일상을 선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콜라비 세 개를 생각나는 대로 요리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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